100년 전, 왕의 밀사가 되어 파리로 향한 여성 독립운동가
많은 사람들이 ‘여성’ 독립운동가로 가장 먼저 ‘유관순’을 떠올린다. 다른 인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350여 명. 여러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한 사람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관순만 기억할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몇 해 전부터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찾아내고 소개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 책이 조명한 ‘김란사’는 고종의 밀사로 국제회의에 파견될 만큼 걸출한 독립지사이자, 조선 여성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며 유관순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독립 정신을 불어넣은 교육가이다. 역사에 이렇게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으면서도 세상을 떠난 지 7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고, 본명 대신 남편의 성을 따른 ‘하란사’로 기록이 남아 있는 김란사.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초록개구리가 이 책을 펴내는 이유이다.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 주다
김란사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자라서 서당에 다닐 수 없는 것이었다. 김란사는 아버지를 설득해 집에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결혼 후엔 기혼자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던 이화학당에 끈질긴 설득 끝에 들어갔다. 그 뒤로는 당시 여성으로는 무척 드물게,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했다.
김란사가 기어코 배우려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일본·청나라·러시아가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느라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교육을 받으면서 교육의 엄청난 힘을 깨달은 김란사는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을 택했다.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강한 나라를 만들고 우리 뜻대로 살아가려면 교육을 통해 조국의 현실을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화학당 교사로 지내면서 유관순을 비롯한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