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중화사상의 뿌리, 삼전도
제2장 ‘조선중화’의 실체
제3장 조선의 상권 장악한 외국 상인들
제4장 개화당, 전술적 변화 추구
제5장 조선과 일본의 개화, 무엇이 달랐나
제6장 개화당, 비밀리에 군대 양성
제7장 “그대는 하늘(天을 아는가?”
제8장 갑신정변 쿠데타의 후폭풍
제9장 조선의 ‘잃어버린 10년’
제10장 “러시아라는 곰을 동아시아의 목장으로 유인하라”
제11장 ‘위안스카이의 세상’이 된 조선
제12장 청의 조선 침탈
제4권 연표
참고문헌
일본의 지원을 받은 갑신정변은 청군에 의해 진압됐다. 청군은 자연스럽게 점령군이 됐고, 청나라의 입김이 강해졌다. 이는 청군에서 주요 역할을 한 위안스카이의 퍼스낼리티도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열강에 침탈당하고 있던 청나라의 사정상 마지막 남은 ‘속국’ 조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이는 한-중 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명을 사대의 대상으로 하는 외교 정책을 택했다. 그러나 내정 간섭은 받지 않았다. 물론 조선의 내부 사정 때문에 왕위 계승이나 세자 책봉 등을 승인받는 과정에서 애를 먹은 경우도 있지만, 크게 보면 자주권이 보장됐다. 조선 중기 종주국이 명에서 청으로 바뀌었지만 그런 대세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청은 명을 대신해 중국 본토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조선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험악한 꼴을 보였지만 명이 멸망한 이후에는 조선을 심하게 압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 말기이자 조선 말기, 동아시아 전체가 서양 세력의 침탈을 받게 되면서 청이 조선을 보는 눈은 달라졌다. 류큐와 타이완, 베트남 등 전통적으로 영향권 아래 있던 나라들이 모두 제국주의 열강의 손에 넘어가면서 유일하게 조선만 남은 것이다. 청은 이제 조선을 과거의 느슨한 조공국 체제가 아니라 조금 더 고삐를 죄는 방식을 모색했다. 서양 열강의 식민지 편입에 좀 더 가까운 모습으로 말이다.
그 첫 번째 계기가 임오군란이었다. 대원군에게 권력을 빼앗긴 고종과 민 왕후는 청군에 의지해 권력을 되찾을 수밖에 없었고, 청군은 점령군이 되었다. 대원군은 청나라로 잡혀갔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과 민 왕후는 개방의 대세와 청의 압박에 휩쓸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재정 상태도 엉망이어서 매관매직과 당오전 발행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결국 일본 같은 나라에서 돈을 꾼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고, 그것이 김옥균과 박영효 등 젊은 개화파들이 고종에게 접근하는 계기가 됐다.
김옥균 등은 고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차관 도입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그것은 결국 실패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