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제1부 식민지 소년 눈을 뜨다
아버지의 좌절과 희망
망국의 분노와 낙향
친일 유림의 온상인 향교 출입을 거부
의병 토벌에 앞장선 지방 유림, 헌병 보조원
의병이 죽거나 말거나, 헌병이 죽거나 말거나
일가족의 목숨이 걸린 통역
지옥에서 돌아온 최명삼 일가
거주지를 전전하다 얻은 아들, 이기홍
은자의 생활을 접고 민중 속으로
희망이 되어가는 청년들
기미년 전야의 대내외 사정
고금도의 만세운동
아주 특별한 하루
덕암산에 울려 퍼진 함성
치밀했던 사전 준비
쑥대밭이 된 마을에서 찾은 희망
그를 일깨운 사람들
섬마을의 잊지 못할 스승들
문화통치 시기의 교육현장
나라도 없는 이 불쌍한 놈들아
섬소년들의 불발된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거치며
광주고보에 합격하다
광주고보 대맹휴(大盟休
성진회 이후 재건된 비밀 학생조직
독서회와 학생소비조합
11월 3일 오전, 메이지절의 충돌
11월 3일 오후, 항일 시위 양상의 전환
휴교 조치와 제2차 시위 계획
청년아, 죽음을 초월하고 싸우자!
백지동맹 주도로 퇴학 처분, 낙향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바른 인식
제2부 청년 독립운동가로
섬에서 다시 만난 인생의 멘토
이십 년의 데자뷰, 십 년 만의 재회
청년 의식화와 농민 조직화
배움이 있던 행복한 날들
민중의 애환, 기억하는 두 개의 민요
잊혀진 역사, 용지포 투쟁
이권의 쟁탈지가 된 용지포
이권옹호 동맹 결성과 별동대 조직
마침내 벌어진 유혈 충돌
전원 검거를 무산시킨 대담한 전략
법대로 하자는 지주, 위기에 처한 협상
작은 전리품, 그보다 값진 연대의 승리
이현열이 보낸 생의 마지막 날들
항일 농민운동의 험난한 길
새로운 동지들과 만남, 전남운동협의회 결성
기본 테제의 수행과 조직 확산 착수
밀고자의 눈을 피해 열린 연극과 야학
의협심이 빚은 비극의 단초, 조직의 발각
한밤중의 체포, 그리고 모진 고문
잊지 못할 악질 형사 노주봉
형무소
이기홍
1912년 전남 완도에서 출생하여 1929년 광주고보 2년 재학중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이듬해에는 백지동맹을 주도하여 퇴학당했다. 낙향 후에는 농민운동에 투신, 1934년에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2년 6개월 복역했고, 일제 말기인 1939년부 터는 거주제한 조치를 당했다.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시위원을 지냈으며 1949년에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동생, 매제가 살해되는 아픔을 겪었다. 6·25 발발 후 보도연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처형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인민군 진주 후 에는 인민 정권에 의해 반당분자로 몰려 체포되어 2개월여 구금되었다. 종전 후 1954년에는 구국동맹사건으로 3년여의 옥고를 치렀고, 1960년에는 광주 4·19 시위로 체포 구금되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사회대중당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독재정권하에 지속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매 정권마다 15회 이상 검거, 12년 6개월 투옥생활을 거쳤고, 자녀들은 지긋지긋한 연좌제에 시달렸다. 생애 말년 실명 상태에서 구술로 자신의 삶과 사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996년 12월 7일 사망, 망월동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