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4
01 격변하는 시대에 태어난 소년, 수많은 처음을 만들다 17
02 조선의 청년, 최신의 학문으로 무장하다 39
이승만의 한시(漢詩 이야기 54
03 젊은 지식인 이승만, 귀국하고 또 다시 망명하다 57
독립의 벗들 72
04 임시정부 시절, 상해와 워싱턴에서 활동하다 83
05 노년의 이승만, 대한민국의 해방을 마주하다 107
나의 프란체스카 120
06 해방 후에도 계속되는 분열과 좌절 131
이승만의 반공(反共주의 144
07 이승만, 드디어 대한민국의 건국 앞에 서다 155
08 또 한번의 시력, 6·25를 맞닥뜨리다 173
국공내전, 그리고 한국의 운명 194
09 드디어 휴전, 한미동맹의 시작 199
10 6·25 전후 대한민국을 설계하다 223
11 해 저물어 날 어두우니 243
기억해야 할 호국의 벗들 262
연표: 이승만의 시대 298
이승만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니
“이승만이 미국의 퍼핏(puppet, 괴뢰?” 약소국 지도자임에도 그 누구보다도 국익을 위해 미국에 당당했던 대통령이 이승만이다.
훗날 기밀문서를 통해 알려졌지만, 당시 미국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승만을 체포해 제거할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강대국들은 여차하면 약소국을 희생시켜 이익을 도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승만은 강대국들이 한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멋대로 전쟁을 중단하려는 모습에 실망했다. (중략 반공포로석방은 그야말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공산군 측을 극도로 자극해 휴전협상 자체를 결렬시킬만한 폭발적 사건이었다. 작은 나라 대통령 이승만은 이처럼 강대국들을 상대로 주춤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뜻을 펴고 있었다. 이는 그 당시 진행이 미진했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추진하고자 하는 이승만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pp. 208-210
“이승만이 제주도민들의 제헌국회 총선 보이콧에 격분해 제주도민을 학살?” ‘당신은 너무 몰랐다.’ 당시 제주도는 소련과 남로당의 지시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의 테러 활동이 거세어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공산주의자들이 곳곳에서 국지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치안 유지기관인 군과 경찰마저도 충돌을 빚었다. 이곳은 이념의 충돌로 불안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공간이었다. 4·3사건 주동자인 김달삼은 1948년 8월 25일 월북해 김일성에게 4·3사건의 전과를 보고하고 국기훈장 2급을 수여받았다. (중략 공산주의자들이 게릴라 전투를 벌이고 정부군이 반격하기를 반복했다. 누가 적이고 친구인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긴박하고 어려운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겪은 희생은 처참했다. (pp. 175-176
당시 소련과 꼭두각시 괴뢰 정부 북한, 중국 공산당의 출현, 미국의 세계 정책 등 국제정치와 국내 상황의 역사적 전후 맥락이 어떠했는지 외면한 채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공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