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시 찾아온 분열시기
46장 당의 멸망
황차오의 난 / 오대십국 시대의 개막
47장 오대십국
‘오대십국’이란? / 오대십국이 역사에 주는 의미 / 정책 중추의 이동: 추밀원과 삼사의 탄생
48장 동북아의 변화
거란 / 연운16주의 할양
49장 암흑기의 빛나는 변혁
수와 송, 개혁의 결실을 훔친 두 왕조 / 암흑기의 대방향 전환 / 흐름을 바꾸는 자는 누구인가? / 시영, 짧지만 강한 개혁 / 중앙군 개혁
5부 10~14세기: 송·원
문인정권의 흥망
50장 10~14세기
51장 송의 건립
번영의 송, 빈약의 송 / 아무 이유 없는 정변 / 배주석병권 / 적빈적약의 토양이 된 변혁들
52장 위기의 인식
번영 뒤에 잠재된 위기 / 재정 위기의 근원 / 두 번의 전쟁
53장 왕안석의 변법 Ⅰ: 똥고집 상공
왕안석, 그는 누구인가? / 왕안석 vs 사마광
54장 왕안석의 변법 Ⅱ: 경제를 이용한 제국 창조
개혁 운동의 시작 / 거침없는 변법의 전개 / 눈부신 변법의 성과 / 왕안석이 보지 못했던 것 / 사마광의 세 번의 편지 / 천체의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 유민도 사건 / 법가 vs 유가
55장 왕안석의 변법 Ⅲ: 한 번 기울어진 운동장
왕안석, 그 후 / 신종의 실패한 복고주의 개혁: 원풍 관제 개혁 / 변법이 남긴 것 / 원우경화: 모든 것을 왕안석 이전으로! / 변법의 변질
56장 북송의 멸망
정강의 변, 책임은 누구한테 있나?
피지배 역사의 시작
57장 남송
남송은 어떻게 해서 세워진 것인가? 273 / 어설픈 대외 투쟁의 역사 / 중국의 운명을 가른 서기 1234년 / 남송의 멸망 / 이학과 간상 사미원의 전략적 동침
개혁사 외전 Ⅴ 신장을 알면 유라시아가 보인다
지형 / 카라한 왕국: 신장의 투르크화와 이슬람화를 이끌다 /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 / 아직 죽지 않은 거란 제국의 짧은 중흥 / 차가타이 칸국 / 차가타이의 해체:
● 책 속으로
875년에 왕선지라는 자가 오늘날 허난성에서 봉기하였고 황차오가 뒤이어 고향인 산동성에서 봉기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 두 세력은 서로 합병하였다. 왕선지라는 자는 누구인가? 재미있는 건 왕선지 역시 소금 밀매업자라는 것이다. 당을 멸망의 길로 이끈 최대 농민봉기를 일으킨 두 명의 창업주들이 모두 소금 밀매업자다?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혹자는 소금 밀매업이 당정부로부터 발각되었고 대대적인 압수와 자산 몰수 사건이 이들로 하여금 봉기군의 수장이 되도록 하였을 것이라 하는데 매우 그럴듯한 추측이다.
황차오가 ‘백성을 구제한다’라는 구호를 내걸긴 했지만 한 가지 사례는 그의 본심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려는 큰 뜻에 있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875년 봉기에서부터 880년 장안에 입성할 때까지 5년 동안 총 다섯 차례에 걸쳐서 당정부와 자신의 관직에 대한 소위 ‘연봉협상’을 했다. 관직을 주면 자신이 반란을 풀겠다는 것이었다. 황차오의 농민군이 광저우를 점령하고 근거지가 생기자 그는 또다시 정부와 협상을 했다. 처음에 그가 제안한 것은 태평군절도사 직이었는데 태평군절도사는 오늘날 산동 일대를 관할하였다. 자신의 고향에서 관리가 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정부가 이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기대치를 낮추어 ‘그럼 광저우에서 살겠다’는 심사로 광주절도사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정부는 이마저도 거부하였고 그에게 온 건 솔부라는 하급 관리직 임명장이었다. 황차오는 뚜껑이 열렸고 “내 장안으로 진격하겠노라!”고 결심하였다.
- 20쪽, 4부 다시 찾아온 분열시기
그럼 병권을 가진 자의 힘을 빼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안사의 난 이후로 중국은 200여 년간 ‘병권’으로부터 기인한 재난에 시달렸기에 조광윤 개혁의 핵심은 사실 ‘병권’에 대한 조정이었다. 조광윤은 ‘황제의 대권에 도전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군사제도에 거대한 변화를 가했다.
그는 금군을 전전사와 시위사로 구성하였다. 전과 비슷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