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팬데믹의 삶을 노래하자
1부 팬데믹 시대의 증상들
1장 왜 철학자에게 작물 수확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하는가
2장 코로나바이러스, 지구온난화, 착취: 동일한 투쟁
3장 동상 파괴는 왜 급진적이지 않은가
4장 아버지…… 혹은 그보다 못한
5장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섹스
6장 돼지와 인간의 (시원찮은 멋진 신세계
7장 접촉 금지의 미래는 필요없다
8장 천국에서의 죽음
2부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
9장 그레타와 버니는 어디에 있나?
10장 맞아요, 붉은 알약…… 그런데 어떤 것?
11장 수행하기 어려운 단순한 것들
12장 전시 공산주의
13장 민주주의의 한계
14장 현재의 정세: 우리의 선택
(결론 아닌 결론 알지 않으려는 의지
부록 권력, 허상, 그리고 외설에 관한 네 가지 성찰
옮긴이 해설 팬데믹을 다시 사유하자
평화롭게 살지도, 손쉽게 죽지도 못한 채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상한 삶
출구 없는 시간의 우울증적 구조를 파헤치다
“백신에 거는 희망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이 뒤섞인 지금,
우리는 끝없이 늦춰지는 신경쇠약 속에 살아간다.”_본문 중에서
출구의 시간대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2020년 봄만 해도 정부는 2주가량의 봉쇄나 다른 방역 조치가 끝나면 상황은 나아질 거라 말했다. 그해 여름이 지나면서 2주는 두 달이 되고, 또 1년이 되었다. 2021년 현재,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을 시작하며 낙관적인 분위기에 부풀었던 세계가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다시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지젝은 팬데믹 초기의 충격을 지배한 감정은 두려움이었지만 뚜렷한 전망이 제시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두려움이 우울증으로 넘어갔다고 진단한다. 명확한 위협이 있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면, 우울증은 우리의 욕망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버텨내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이러한 우울증적 반응은 팬데믹이 불러온 심리적 충격의 일부일 뿐이다.
전면 봉쇄와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와중에 독일의 광장에서, 영국의 해변에서,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정부의 방역 조치에 맞서는 시위가 있었다. 우파 포퓰리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과장되었다는 음모론을 설파하고, 일부 급진 좌파는 정부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자국민을 완전히 통제하려고 한다며 팬데믹에 맞서 싸우기를 거부했다. 지젝은 지난 1년 동안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를 지배한 “삶은 지속된다”는 구호,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열망을 일종의 정신병적 징후, 집단적 광기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징후의 결말은 지젝에게 ‘세계의 또 다른 종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연을 가린다는 이유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 아감벤의 시(“사랑이 폐지되었다”는 지젝에게 와서 정확히 이렇게 비틀어진다. “의료가 폐지되었다 / 자유라는 명분으로 / 이제 자유가 폐지될 것이다. / 생명이 폐지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