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통해 삶을 다시 배우는 시간
무엇이든 그렇지만 특히 농사는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빠에게는 밭농사의 시간이 하늘이 하는 일에 순응하게 되는 시간이었지요. 애써 키워 놓은 고추가 병에 걸리기도 하고, 태풍으로 다 키운 작물이 다 떠내려가기도 하는 일이 다분한 농사. 그뿐일까요? 먹기 좋은 연한 싹은 고라니가 따먹고, 멧돼지도 경계의 대상이지요.
땅은 인풋이 있으면 반드시 그만한 아웃풋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지요. 시간 대비 효율적인 노하우가 있음을 알려주지도 않고요. 올해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도 그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한 해 농사가 잘 되면 한 해는 안 됨을, 잘되는 날만 오지 않음을, 마음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음 음을 순하게 가르쳐 줍니다. 평생 손으로 무언가를 길러 본 적이 없는 아빠지만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밭일에 빠지고 땅의 순리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도시인으로 살던 한 남자가 이제까지 믿었던 삶의 법칙, 믿었던 원칙들이 하나하나 재배치됩니다. 하늘 아래 겸손함을 배우는 시간이 됩니다.
커다란 품 같은 밭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 노년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뒤 찾아오는 노년의 삶은 때때로 건조하기 마련입니다. 앞만 보고, 가족만 보고 달려온 삶인데 그 가족이 모두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면 남는 것은 허무함일 때가 많지요.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재밌어 하는지에 대한 관심 두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이 아쉽기도 할 것입니다. 노작가인 폴 투르니에는 《노년의 의미》라는 책에서 늙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년의 삶은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와 목적, 희망이 있는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하지요.
《아빠의 밭》의 아빠는 그 희망과 의미를 흙에서 찾았습니다. 흙을 만지고, 밟으면 덜 두려워진다고 말합니다. 위로 더 위로 상승해야만 의미가 있었던 삶을 내려놓고 아래로 더 아래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흙이 가르쳐준 것이지요. 땅의 속성과 비슷해지는 노년의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