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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저자 이숙인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판일 2021-06-29
정가 18,000원
ISBN 979116040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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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하다
피난길의 담대한 꿈, 남평 조씨
솔직한 모성, 신천 강씨
평범했으나 숭고한 삶, 김돈이
대적하는 짝, 송덕봉
가려진 재능, 신사임당의 두 손녀
칼 대신 붓을 든 이유, 풍양 조씨
근원적 고통에 대한 유대, 여비 춘비
사랑으로 쓴 성장의 기록, 손녀 숙희
마을을 돌며 근심을 위로하다, 무녀 추월
유모의 인생역전, 봉보부인 백씨
자산 관리의 달인, 화순 최씨
선비 아내의 내공, 문화 류씨
알 수 없는 탁월함, 송씨 부인
다산의 아내로 산다는 것, 홍혜완
귀양지에서 다산을 되살리다, 소실 홍임모母

2. 성녀와 마녀의 프레임을 넘어
마음의 주체가 되다, 허난설헌
시대를 초월하는 시대정신, 황진이
임금의 마지막을 지킨 어의녀, 대장금
공동체를 위한 한 줄기 빛, 논개
시련에도 잃지 않은 예의, 정순왕후
가부장 권력을 내 편으로, 소혜왕후
조선과 중국의 경계인, 한계란
7개월 만에 ‘구성된’ 죄, 폐비 윤씨
사실은 평범한 여인, 장희빈
성공을 향한 몸부림, 정난정
뒤늦게 위로된 슬픔, 세자빈 강씨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 도미 부인

3. 닫힌 운명에 균열을 내다
부당한 이혼 요구에 맞서다, 신태영
혈통의 허상을 드러내다, 옥비
성범죄 피해자의 사적 복수, 김은애
사족 여성의 사생활, 함안 이씨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국가, 환향녀 윤씨
감정과 욕망의 주인, 여비 돌금
죽음으로 얻은 명예의 역설, 박씨 부인
집단 광기의 제물, 신숙녀
열녀 만들기 프로젝트, 배천 조씨
아름답고 음란하게, 낙안 김씨
임금의 새벽잠을 깨운 촌부, 윤덕녕
참을 수 없는 희롱, 여비 향복
사족의 민낯을 까발리다, 유감동

4. 시대의 틈에서 ‘나’를 꽃피우다
보고 느끼고 기록하라, 남의유당
가문의 영광을 만든 여자, 서영수합
사람을 만드는 교육, 이사주당
집안일의 지식화, 이빙허각
삶의 성리학자, 임윤지당
퇴계학 중흥의 어머니, 장계향
여성
성녀도 마녀도 아닌 ‘한 인간’의 자취,
그 다채롭고 도도한 힘을 만나다

이 책의 1부 ‘구체적으로 살고 입체적으로 존재하다’는 자신의 운명 안에서 나름대로 개성 있게 살았으나 ‘시대가 주목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여겨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례로 경북 지역에서 칠십여 생을 살다 간 신천 강씨는 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점잖게 박제된’ 양반가 여성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첩을 들인 남편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강씨의 목소리는 500년 전을 살던 한 여성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전한다.

“뒤로 갈수록 편지의 내용은 과격해진다. ‘오로지 그년에게 붙어서 당신 것을 맡기니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구나. 아마도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속절은 없다.’ 강씨는 또 자신의 서러운 뜻을 남편과 자식이 모르고 있고, 또 늘 용심이 나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 사족 마님은 품위를 지키느라 무심한 척 애를 쓴다.”_23쪽

사족 이문건가의 여비(女婢였던 춘비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 35세 전후에 몸에 종기가 퍼지기 시작해 두 달 만에 숨을 거둔 그녀를 ‘주인’ 이문건은 살려보려 애쓰며 시시각각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적어둔다. 사극에서 노비들은 그저 충직하거나 말이 없고 기록에서도 보통 소유주의 물목에 불과한데, 이문건의 시선에 담긴 춘비는 투병 중 ‘소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근원의 고통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이문건의 ‘기록벽’ 덕에 존재의 흔적을 남기게 된 여성들이 이 책에 여럿 등장한다. 신분을 넘어선 인간 유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춘비를 비롯해 또 다른 여비 돌금과 향복, 이문건이 30년간 쓴 일기의 여자주인공인 아내 김돈이, ‘단골’로 거래했던 무녀 추월, 애지중지하던 손녀 숙희 등이다. 이들을 연결하는 이문건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우리가 과거의 인물을 불러낼 때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