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비가 어디있어, 내리는게 비라니까.”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게 비다.”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이 말은 인간의 언어 습관이 만들어낸 착각과 맹목적 믿음을 비틀어 꼬집고 있습니다. ‘비’는 ‘비’라고 언어로 규정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자연 만물이 관계한 결과로 물방울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지만, 주어를 쓰는 인간의 언어습관 덕분에 ‘비’는 ‘내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행위의 주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주어의 자리에 ‘인간’이 오게 되면 훨씬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 나다.”라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요. 사실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인 내가, 그것도 ‘자유의지’를 가진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걷기’를 가능하게 하는 내 안과 밖의 수많은 개체의 관계와 협력이 있기 전에는 내가 없는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나’가 명확하고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바로 인간의 언어적 착각이 만든 무지의 비극적 효과입니다. 그래서 내가 걷고, 먹고, 잠자고, 싸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나의 모든 행위는 내 자유의지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나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바로 우리의 자유의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이 거대한 착각으로부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자연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무의식적 확신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욕망에 봉사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자연의 법칙으로 믿고 따르는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무지와 교만은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하고 있으며 인간의 역사는 곧 자연 파괴의 역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우리의 사유가 도달해야 하고 또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