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연보
서론
Ⅰ. 대한제국기 전력산업의 형성
1. 한성전기회사의 설립과 경영
한성전기의 설립과정과 회사의 성격
콜브란 측의 경영 확장 기도
한성전기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채무분규와 이용익의 경영권 장악 모색
2. 한성전기회사의 한미전기회사로의 개편
국제정세의 변화와 채무분규의 해결
한미전기로의 개편과정과 경영성적
3. 일제의 전력산업 장악과정
일제의 ‘시정개선’과 전력산업의 장악 기도
일한와사의 설립과 한미전기의 인수
Ⅱ. 일제강점기 전력산업의 구조
1. 1910~1920년대 전력산업정책과 전력업계의 동향
1910년대 전력산업의 감독제도 정비와 전력업계
1920년대 수력발전소 건설과 전력통제정책의 필요성 대두
2. 1930년대 초 전력통제정책의 수립과정
전력통제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정책 수립 지연
공영화운동의 고조와 전력통제정책의 수립
3. 전력통제정책의 전개와 전력산업의 구조개편
‘북=수력, 남=화력’ 분리된 두 계통의 전력네트워크 구축
지역별 배전회사의 통합 추진
거대 발송전회사의 등장과 대규모 발송전 설비
4. 전시 말 전력국가관리체제의 수립
전력통제정책이 초래한 문제와 해결방안 모색
일원적 전력국가관리의 실시 요구와 도입 지연
조선전력관리령 공포와 조선전업의 설립
Ⅲ. 1945~1961년 전력산업의 위기와 극복
1. 해방 직후 전력산업의 위기
미군정기 전력난과 5.14단전
전력자급체제 구축을 위한 전력개발계획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력시설의 파괴
2. 1950년대 전원개발의 추진과 업계 동향
장기전원개발계획의 수립과 변천
전기 3사의 경영난과 전력산업구조개편 논의
3. 전기 3사의 통합과 한국전력(주의 창립
수급격차 해소를 위한 긴급전원개발의 추진
전기3사 통합정책의 난항
한국전력(주의 창립
결론
참고문헌
주석
찾아보기
대한제국, 한성전기회사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한국의 전력산업은 고종과 친미개화파 관료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영국 태생의 미국 실업가 콜브란과 손잡고 설립한 최초의 전기회사 한성전기는 명목상 민간회사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황실기업이었으며 대한제국의 산업진흥정책을 상징하는 대표적 기업이었다. 여기엔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반일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전차를 놓으려는 고종의 의도도 반영됐다(49쪽. 정치 주도로 시작된 한성전기는 경영 과정에서 이용익을 중심으로 한 근왕파의 반대, 러일전쟁을 전후한 미일 등 국제정치의 세력 다툼을 겪으며 한미전기회사로, 종내는 일본인 회사인 일한와사에 매각된다. 한성전기의 실패를 두고 미국 의존적이었다거나 대한제국은 미일에 비해 손해만 떠안게 되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지은이는 이에 이견을 제시한다. 탄생 자체가 ‘정치적 산물’이었고, 한미 간 그리고 미일 간 외교문제이기도 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1903년에 반미운동의 하나로 전차 승차 거부운동이 벌어졌다는 흥미로운 일화(88쪽 등을 곁들여서.
일제강점기, ‘북=수력’ ‘남=화력’이라는 기형적 산업구조
일제강점기를 다룬 부분은 전력통제정책과 일제 말에 형성된 전력 국가관리체제의 내용과 성격을 면밀히 검토한다. 1920년대 초 북한강 상류에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성공했지만 남쪽의 강릉수력 건설이 무산되면서 영월화력으로 대치된 것이 ‘북=수력, 남=화력’이란 전력산업구조의 기본 틀이 마련되는 계기였다고 설명한다(195쪽. 여기에 1930년대 초에는 한반도 전역에 무려 63개의 전기회사가 영업할 정도로 전력산업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한국인 소유 주식이 절반을 넘는 회사는 1931년 현재 7개사에 불과했다는 등 식민지 경제체제의 실상을 보여준다(159쪽. 한반도를 4개 구역으로 나눠 배전회사를 세워 전력통제를 했다든가 일제 말에 이르러서는 ‘전력 국영론’이 대두해 ‘조선전업’을 통해 전력 국가관리를 꾀한 사실 등 제도사에 비중을 두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