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윤상원 평전을 쓰면서
프롤로그 최후의 항전
1장 한국사회의 현실에 눈뜨다
2장 19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
3장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다
4장 녹두서점
5장 짧은 은행원 생활
6장 노동 현장으로
7장 들불야학
8장 부문운동의 분화와 폭발적인 성장
9장 꿈틀거리는 노동 현장
10장 유신의 몰락
11장 새로운 군부독재의 풍랑 속에서
12장 1980년, 전열을 가다듬다
13장 불타오르는 5월
14장 작전 명령 ‘화려한 휴가’
15장 국민연합의 전국 동시다발 시위
16장 전라 민중, 무기를 들다
17장 총기 회수와 재무장
18장 우리가 광주를 지키겠다
19장 마지막 밤
20장 5월, 그 후
에필로그 임을 위한 행진곡
윤상원 연보
참고문헌, 도판 저작권
“형님 어쩌실라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이미 지도부 몇 사람이 도청을 빠져 나간 것 같으니 우리도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양현이 말했다.
“아까 궐기대회 때 분수대에 올라가서 ‘최후의 일 인,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해놓고 어쩌겠는가? 나는 여기 남을라네.”
이양현의 굳은 결심을 확인한 윤강옥은 소파에 드러누우며 “나도 형님 뜻에 따를라요” 하곤 머리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13쪽
당시 광주전남권의 운동 상황은 아직은 여전히 과도기적인 형태였다. (… 들불야학을 통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나아가 주민운동까지 발전하면서 학생운동의 폭이 넓어졌고 많은 운동가들이 성장했다. 동시에 1977년 광주앰네스티가 창립되면서 재야인사들이 공개적·합법적으로 시국 강연을 개최하고 양심수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송백회가 결성되고 광주양서협동조합이 조직되자, 그동안 대학가와 개신교·천주교 중심으로 전개되던 민주화운동에 교사 등 일반 시민과 고등학생까지 참여하게 되었다.(114쪽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
그 ‘탄생’부터 결사항전까지
이 책의 전반부가 평범한 외교관 지망생이던 윤상원이 어떻게 투사로 변모하고 김상집?이양현?정상용?김영철?윤한봉 등 항쟁의 주역들과 만나는지를 그린다면, 후반부는 연이은 군부독재의 야만 속에서 태동하고 폭발한 항쟁을 증언한다.
1975년. 군에서 제대한 윤상원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복학해 외무고시 패스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그는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된 상황이었음에도 김상윤이라는 걸출한 운동가를 만나기 전까지 민청학련 사건부터 가까운 광주일고 학생들의 무더기 제적 사태까지 피상적으로만 알았을 뿐 한국사회의 현실에 제대로 눈뜨지 못했다.
의식화 학습을 강조한 사람이 김남주였다면, 이를 체계화한 사람은 김상윤이었다. 김상윤은 체계적인 커리큘럼의 필요성을 느끼고, 분야별로 필요한 책들을 정해서 한 권 한 권 독파해나갔다. 책은 김상윤이 직접 헌책방과 도서관을 뒤져 구해 왔고,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