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작가의 말
1. 포시에트 항구
2. 흙비가 내리다
3. 끝없이 너른 벌판
4. 가출
5. 기나긴 항해
6. 표트르 세메노비츠 최
7. 그리운 아버지
8. 얀치혜의 새 출발
9. 도헌이 되어
10.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가다
11. 조선의 부름과 재혼
12. 조선의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13. 박영효를 만나다
14. 을사늑약
15. 밀지를 받은 사람들
16. 동의회와 의병부대
17. 안중근의 단지동맹
18. 코레아 우라!
19. 권업회 총재로
20. 러시아 한인이주 50주년 기념사업
21. 사라예보의 총소리
22. 파리강화회의
23. 시베리아의 별이 되다
우리 할아버지 최재형을 소개합니다
발간에 부쳐
연표
노비의 아들에서 러시아 사업가로, 항일 독립운동가로
최재형이 있기에 가능했던 안중근의 하얼빈의거
1860년 함경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은 계속되는 가난에 시달리다 열한 살에 집을 나온다. 러시아 선장 부부의 눈에 띄어 친아들처럼 키워진 그는 러시아어뿐 아니라 문학, 역사, 과학 등 서양 학문을 두루 배우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세계일주를 하며 견문을 넓혔다. 헐벗고 굶주린 조선 노비의 아들에서 외국어 실력과 사업수완을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 최재형은 농사밖에 모르던 한인들을 이끌어 가며 제정 러시아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등 여러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사업에서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학교를 세워 배움의 기회를 주는 등 러시아 한인들의 삶에 희망의 횃불을 밝혔다. 그리고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인 최초로 러시아 도헌(우리나라의 군수에 해당에 선출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최재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 조국 대한제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연해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의병들을 규합하여 두만강 일대를 누비며 일본군과 싸웠다. 이때 함께 했던 의병 중 하나이며, 최재형이 발행한 항일민족신문 <대동공보>의 통신원이 바로 안중근이었다. 국외 항일운동은 최재형이라는 든든한 후원자의 뒷받침 덕분에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같은 결실을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최재형을 재무총장으로 추대했으나, 그는 이듬 해 1920년 일본군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최재형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고자 러시아로 떠났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라며 아들을 러시아 학교의 첫 조선인 학생으로 입학시켰다. 아버지의 바램대로 최재형은 출신, 국경, 언어의 벽을 넘어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거인이 되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한인사회의 리더로, 독립운동가로, 그는 자신의 꿈과 신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