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1장 시대의 역진에 맞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 재무장(再武裝을 위한 사회복지의 희생 | 나의 운명에 불복한다
2장 귀를 기울이다
북한여성들의 절박한 호소 | 전후 유럽의 ‘반파시즘’과 국제민주여성연맹 | 국제여맹의 ‘반식민주의’와 제3세계 현지조사 활동
3장 프라하에서 신의주까지
특별한 이력의 여성들 | 나는 어떤 사전합의에도 반대한다 | 모스끄바의 웃음 | 최초의 전체회의와 갈등의 폭발
4장 지하의 아이들
유서를 쓰고 강을 건너다 | 하루 동안에 쏟아진 8만 5천발의 소이탄 | 우리는 충분히 보았다
5장 그을린 사람들
평양으로 가는 길 | 절대적 폐허의 무(無 | 초대형 지하벙커와 불편한 환대
6장 거대한 무덤의 산 위에서
황해도 대학살: 안악과 신천 | 증언에 대한 의구심
7장 나의 이름으로
전시 성폭력의 주요 유형들 | 20세기의 전쟁과 전시 성폭력 | 증언의 고통 | 개전과 관련된 북한 측 주장의 불수용
8장 억압된 시선들
우리는 고발한다 | 압도하는 냉전, 억압된 제3의 시선들 | 그곳에, 여성들이 있으므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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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지옥으로 변해버린 지상의 삶
저자는 전작 『폭격』으로 출간된 자신의 박사논문 집필 과정에서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공식문서들을 치밀하게 분석해 미국 군사작전과 한반도 전쟁피해 규모의 충격적인 실체, 즉 개전 초기 군사목표만을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정밀폭격 전략이 중공군의 개입 이후 1950년 11월 5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어 북한의 도시와 농촌의 인구밀집지역을 집중공격하는 ‘초토화정책’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국제여맹 조사위원회는 이러한 집중포화가 북한을 휩쓸고 간 1951년 5월 16일 밤 북한 신의주에 도착했고, ‘거대한 무덤의 산’이 되어버린 북한의 현실을 마주했다. 조사단은 10일이라는 짧은 현지조사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몇개의 조로 나뉘어 신의주, 평양, 황해도의 안악과 신천, 평안남도의 남포시와 강서군, 개천군, 자강도의 희천군, 강계시 등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단은 모든 건물이 사라지고 불타버린 땅에 토굴을 파고 그 구덩이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하루 동안 8만 5천발의 소이탄이 하늘에서 쏟아진 현장, 광범하게 자행된 민간인 집단학살과 고문, 생매장, 참혹한 전시 성폭력의 흔적과 증언들을 기록했다. 폐허의 도시에는 여성과 노인과 어린아이들만 가득했다. 국가와 인종과 사상을 떠나, 조사위원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북한 여성들에게 강한 연민과 연대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개성 강한 여성들이 모인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는 몇차례 논쟁적인 상황에 휩싸이거나 구성원끼리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최종보고서의 내용에 합의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북한의 상황이 절박하고 절망적이라는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사위원회는 미국을 강력하게 성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아무리 정당한 사유로 시작된 전쟁이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모든 도시와 농촌을 완전히 불살라버리고, 도저히 군사적 목표로 간주할 수 없는 폐허 위에 계속 폭탄을 투하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