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 봄에 읽은 학교 이야기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학교를 ‘사용’함으로써
다니엘 페나크, 『학교의 슬픔』|교사로 ‘일’함으로써
김명길, 『학교는 시끄러워야 한다』|가르침은 ‘삶’으로써
존 테일러 개토, 『바보 만들기』|‘바보’가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무지’로 평등함으로써
2. 여름에 읽은 집 이야기
라헬 하우스파터,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독립이라는 ‘자유’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오이대왕』|아버지라는 ‘두려움’
김고연주, 『우리 엄마는 왜?』|어머니라는 ‘익숙함’
조너선 데이턴·밸러리 패리스, <미스 리틀 선샤인>|가족이라는 ‘홈 파인 공간’
3. 가을에 읽은 마을 이야기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리고 도시가 태어났다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도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장성익,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말한다 (1
장성익,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말한다 (2
4. 겨울에 읽은 세상 이야기
아트 슈피겔만, 『쥐』|1940년, 폴란드 남쪽의 기억
한강, 『소년이 온다』|1980년, 광주의 기억
임정은,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2008년, 서울의 기억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2019년 용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필로그
지은이 인터뷰 중에서
1.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는 1년 동안 선생님께서 중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들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중학생이라니! ‘중2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이 높은 존재들이 중학생 아닌가요?^^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은 중학생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이었는지, 어떻게 해서 선생님과 책을 함께 읽게 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중학생들과 함께 책 읽는 수업을 한다고 말하면 늘 받는 질문이 그거였어요. “힘들지 않아? 걔들이 감당이 돼?” 중2병, 질풍노도의 시기, 그리고 기타 등등……, ‘중학생’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마다 전 이렇게 대답했죠. “애초에 책 읽는 수업 들으러 오는 애들이면 어느 정도는 다 얌전한 애들이야.” 그럼 또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납득하더군요.
글쎄, 정말로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함께 수업한 친구들 중에서는 대놓고 수업 중에 떠들어 댄다거나 일부러 방해를 한다거나 하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들 그다지 말이 없는 편이었지요. 자기 스스로 온 경우보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온 경우가 많았고, 힘겹게 책을 읽어 오기는 해도 적극적으로 자기 감상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말이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성격이 내성적인 친구도 있었고,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쉽게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고, 자기 의지로 온 게 아니다 보니 의욕이 별로 없는 친구도 있었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자기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아마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같은데 그 침묵이 난감하긴 해도 그리 당황스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비단 중학생이 아니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갖는다고 하면 누구나 처음엔 어색하고 어쩔 줄 모르지 않겠어요? 그건 당연한 것이고, 다시 말해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