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반만년 역사를 깨우다
제1장독립운동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다
제2장대한민국 임시정부, 왜 상하이에서 수립했나
제3장연통제와 교통국을 통해 국내와 연계하다
제4장임시의정원,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하다
제5장다섯 차례에 걸친 헌법개정, 다양한 지도체제를 경험하다
제2부 고난과 존립 위기를 극복하다
제6장한인애국단을 결성하고, 일왕 처단을 추진하다
제7장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를 처단하다
제8장상하이에서 충칭까지, 고난의 대장정에 오르다
제9장존립 위기를 극복해 내다
제3부 연합군과 공동항전을 전개하다
제10장대한민국의 국군,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다
제11장한국광복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다
제12장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를 발표하다
제13장인도-버마전선에서 영국군과 대일전쟁을 수행하다
제14장미국의 OSS와 독수리작전으로 국내 진입을 추진하다
제4부 연합군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다
제15장광복 후 ‘신민주국’ 건설을 계획하다
제16장카이로회의에서 자유 독립을 보장받다
제17장좌익 세력의 임시정부 참여로 좌우연합정부를 구성하다
제18장충칭 임시정부 청사에 걸린 프랑스 국기
제5부 임시정부, 해방 후의 역사로 이어지다
제19장환국 후 국내에서 과도정권 수립을 추진하다
제20장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지다
제21장임시의정원, 비상국민회의, 국민의회를 거쳐 국회로
제22장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오해와 폄훼
중국을 움직여 얻어낸 자유 독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8월 15일 해방은 되었지만, 한반도는 다시 미국과 소련에 점령되었다. 두 나라는 일본에 승리한 후 전리품으로 한반도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얻은 한반도지만 두 나라는 3년 만에 물러났고, 한민족은 1948년 독립된 국가와 정부를 갖게 되었다. 이를 미국과 소련이 베푼 은혜로 보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한민족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연합군이 독립을 보장해 주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럴 리는 만무하다. 카이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이 결정되는 과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의 독립은 연합국이 준 일방적 선물이 아니다. 50여 년에 걸친 독립운동의 결과였고, 임시정부가 장제스를 움직여 얻어낸 성과였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건립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와 가치를 폄훼하고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정부가 주도해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한 것이다. ‘광복절’은 일제의 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광복’보다는 ‘건국’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뿐만 아니다.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의 거센 항의와 연구 단체들의 반대 성명 발표로 무산되었지만, 이 과정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저자는 ??제헌국회속기록??에 있는 이승만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인용해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된 것이 아니라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건립되었고,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에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은 것임을 확인시킨다. 덧붙여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역사의식을 왜곡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승만을 욕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