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에 상처를 감추고 숨죽여 울었던
너를 위한 시의 위로와 치유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하나쯤 가지고 살아간다. 나를 숨기고 싶을 때 그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 연기를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겸이는 반달 모양의 눈에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 가만히 있어도 웃는 얼굴이다. 겸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오랜 세월 가족을 방치한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웃는 얼굴에 속마음을 감춘 채 살아간다. 하지만 슬픔이 차올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는 홀로 숨죽여 운다.
그러던 어느 날, 겸이는 이사 간 집에서 낡은 시집 하나를 발견한다. ‘기형도’라는 시인이 누구인지도, 시를 어떻게 읽고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 시집에서 발견한 「엄마 걱정」이라는 시 하나가 가슴 속에 놀라운 파장을 만든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당시 엄마가 했던 말의 의미가 그대로 전달된다.
그날부터 겸이는 시를 읽고 쓰고 암송한다. 시를 읽는다고 당장의 현실이 바뀌는 것도 답답한 구석이 있는 자신을 변하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시를 읽는 순간, 마음속에 부는 거센 바람이 잔잔해지고 실타래처럼 엉겨 붙었던 슬픔이 조금씩 사라진다. 겉으로 보기에 겸이는 슬플 때도 웃는 아이다. 사실 그건 생김새가 만들어 낸 착각일 뿐 진짜 웃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시는 퍼석거리는 삶에 적당한 온기와 습도를 제공하고 진짜 웃음을 선사한다.
이처럼 이 책은 깊은 슬픔과 원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겸이가 시를 통해 조금씩 치유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 준다. 특히 ‘삶이 고단해 한숨을 쉬러 오는, 그러다 보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는 숲, 숨을 쉬는 숲, 숨을 쉬게 하는 숲’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 지은 ‘숨숲’에서 겸이가 시를 읽고 쓰는 모습이 펼쳐질 때마다 독자들도 함께 숨통이 탁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겸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의 아픔을 이겨 낸 은혜 칼국시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선사하는 유쾌한 웃음도 만날 수 있다.
먼 훗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