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에 새긴 판화 그림 속에 담긴 긴 여운
그림책《비가 올까 봐》는 디지털 그림이 대세인 현실 속에서 흔히 보기 힘든 판화 그림책입니다. 피나무 위에 조각도로 그림을 새겼습니다. 판만 파는 데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프레스기가 없어 발로 밟아 찍어서 만든 그림들이기에 한 장의 그림을 얻기 위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계획대로 되지 않고 다르게 찍히는 결과물을 보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림책 속 주인공의 불안과 미묘하게 겹쳤다고 고백합니다.
B씨가 외출을 하고 버려진 강아지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집에서 강아지와 진정한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온전히 흐르는 대로 보여 주기 위해 병풍 제본을 선택했습니다. 전체를 펼치면 약 4미터짜리 책이 됩니다. 펼쳐놓고 보면 주인공 마음의 흐름, 강아지와의 만남과 관계의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컬러풀한 세상에서 먹으로만 처리된 판화는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게 만듭니다. 내가 걸어온 삶을 조금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관계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조금씩 곁을 내주는 것도 좋겠다는 조용한 깨달음을 건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