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백 번씩 읽는 책벌레 왕자
왕자 이도(세종의 이름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같은 책을 백 번이나 읽을 정도로 좋아했지요. 백 번을 읽고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으면 백 번을 더 읽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주 병이 낫고,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인 태종은 그런 아들이 걱정되어 책을 읽지 못하도록 방에서 책을 모두 치우라고 명령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왕자 이도는 한 권의 책을 숨겨 두고 그것을 몰래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습니다.
원래 왕의 자리는 큰 아들이 잇는 것이었습니다. 태종의 첫째 아들인 양녕 대군이 일찌감치 세자로 책봉되었지요. 그러나 양녕 대군은 나이가 들면서 공부는 게을리 하고 사냥과 술을 즐기는 등 행실이 좋지 않아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어질고 생각이 깊은 셋째 충녕 대군(세종의 봉호이 세자로 책봉됩니다.
태종은 왕위를 일찍 충녕 대군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장차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 대왕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왕위를 물려준 태종은 직접 여러 일을 결정하며 세종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임금 수업’을 시켰습니다. 특히 책은 많이 읽었지만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 본 경험도 없는 세종이기에, 태종은 세종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군사 결정은 자신이 내리겠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종은 아버지 태종을 통하여 군사권을 행사하는 방법과 전쟁에서 승리하는 전략을 배웠습니다.
집현전 학사, 박연 그리고 장영실
세종은 젊고 참신한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 젊은 학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하며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거의 활동을 하지 않던 집현전을 부활시켰습니다. 세종의 수많은 업적 중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히는 한글 창제에 큰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집현전입니다.
중국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듣기 거북했던 세종은 박연으로 하여금 우리 음악을 되살리도록 시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