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에 대한 신뢰: 사후세계에 대한 냉담함
요시카와는 중국인의 정신의 가진 가장 중요하고 중심이 되는 특질이 ‘감각에 대한 신뢰’라고 지적한다. 중국인은 감각을 넘어선 존재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사후생활에 대한 냉담함’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말했다. 요시카와는 인간은 죽은 뒤 어떻게 되느냐에 대해서, 중국인이 지은 책에는 딱 부러지게 말한 기록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중국인의 냉담함을 요시카와는 ‘신화’와 ‘소설’이라는 두 채널을 통해 설명한다. 우선 중국엔 신화가 많지 않다. ‘하늘과 땅天地’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해와 달은 어떻게 생겼는가, 인간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그런 것에 대해 대개의 민족은 신화적인 설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천지만물이나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을 듣는 일은 매우 어렵다. 또한 중국에서는 소설이 활발히 일어나지 않았다. 소설이라는 것은 본래부터 감각에 닿은 세계를 모방하여 짓는 글의 갈래이며,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진짜로 감각에 닿는 사실史實과는 다르다. 중국에서는 소설을 늘 건전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했다.
감각 신뢰가 선례先例에 대한 집착으로
‘감각의 세계를 신뢰하는’ 성향은 생활의 법칙을 이미 발생한 사실, 즉 선례先例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생활, 즉 선례는 옛사람들이 살면서 감각했던 것이고 그 점에서 확실한 느낌을 준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이성으로 생활 법칙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낀다. 이성으로 발견한 법칙은 늘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형태이고, 미래와 이어져 있으며 그저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과거에 존재했고, 감각에 닿았고 의식 안에 들어온 생활만큼 확실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감각을 신뢰하고 집착하는 입장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이 통일되는 방향보다 오히려 통일되지
않는 방향에 더욱 민감하게 만들었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