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 ‘자객의 삶’에서 ‘제왕의 스승’으로! _5
들어가는 말 : 진시황을 저격하다 _13
제1장 복수
승상부의 공자(公子 _25
동방의 은자 _33
△동방의 은사 창해군(倉海郡 △장량이 진시황 암살을 모의하다
제2장 천애
병서 이야기 _45
△하비에 몸을 숨기다 △황석공을 위해 신발을 주워주다
△『태공병법』을 깊이 연구하다 △하비에서 협객으로 살다
의협심으로 항백을 구해주다 _63
제3장 풍운
유방과 교유하다 _71
△진시황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다 △장량이 봉기하다 △유방을 만나다
한(韓나라 복수 또 한(韓나라 복수 _83
△진승에 대한 범증의 평가 △항량이 설성에서 회의를 열다 △장량이 한왕 성을 옹립하다
중원의 각축 _95
△서진(西進 도중 △완성에서 계책을 바치다
책략으로 관중을 취하다 _108
△가볍게 무관을 빼앗다 △계책을 써서 요관을 탈취하다
유방이 함양으로 진격하다 _120
△자영이 투항하다 △유방에게 패상으로 물러나도록 권하다 △백성에게 약법삼장을 시행하다
제4장 책략
패상의 위기를 해결하다 _135
△조무상의 밀고 △항백의 밀고
천하 제일 연회 _146
△유방이 홍문으로 가서 사죄하다 △번쾌의 행동
항우의 대분봉 _155
△열여덟 제후를 분봉하다 △유방을 파촉에 분봉하다
△유방을 위해 한중을 취하다 △잔도를 불태우다
팽성에서 관중까지 _171
△한왕(韓王을 도와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다 △다시 유방의 곁으로 돌아오다
제5장 쟁패
하읍(下邑의 계책 _185
△유방이 팽성에서 대패하다 △영포, 팽월, 한신에게 연락하다
젓가락으로 제후 분봉을 막다 _196
△역이기의 단견 △장량의 명쾌한 논리
초.한 균형의 저울추 _211
△한신이 임시 제나라 왕에 책봉해달라고 청하다 △한신이 장량의 권고를 따르다
유방과 항우의 쟁투 _223
△광무산 대치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삶아 죽이려 하다 △항우의 10대 죄상
초?한의 경계 물길 _2
제갈량의 ‘롤모델’ 장량, ‘위대한 책사’를 넘어 ‘제왕의 스승’이 되다!
장량은 한(漢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책략의 대가였다. 장량을 평하여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은 “영예와 이익을 내버려두고 돌아보지 않으면서 이른바 현명하게 자신의 몸을 보전한 사람으로는 장자방이 있다.”라고 평했고, 명나라 말기 왕부지(王夫之는 “장량은 매우 지혜로웠지만 마음에 진실로 사사로움이 없었다.”라고 했다. 또 현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는 “항우는 100여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장량의 계책을 막지 못해서 결국 우세에서 열세로 처지가 바뀌어 강화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또 흔히들 장량을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 제갈량과 비교하기도 한다. 제갈량 자신도 장량에 대해 “그 모습을 쳐다보면 위엄이 없는 듯하지만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하여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제왕의 스승이 되었다. 우리는 그에게 탄복하고, 그를 존경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칭송했다. 요즘 말로 하면 제갈량의 ‘롤모델’이 바로 장량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천하통일에 실패했지만, 장량은 한 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에 성공한 만큼 제갈량보다 오히려 장량의 재능을 더 윗길로 보는 사람도 많다.
역사가들 중에는 장량을 주나라 무왕(武王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강태공(姜太公과 비교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강태공은 동방의 강대국 제(齊나라에 분봉되어 신하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린 반면, 장량은 제나라의 3만 호 식읍을 마음대로 선택하라는 한 고조의 제의를 사양하고 전체 호구가 겨우 2천 호에 불과한 유현(留縣을 자신의 봉읍으로 자청했다. 한 고조가 ‘건국삼걸’로 꼽은 사람 중에서 장량과 같은 문신(文臣인 소하가 8천 호의 식읍을 받았고, 또 한 명의 삼걸인 한신이 초왕(楚王에 분봉된 사실을 상기해보면 장량의 겸양은 단순한 겸양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역사에서는 “공을 세우고 뒤로 물러난” 경력에 비추어 장량을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재상 범려(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