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전쟁 국면의 변화 (2?543
제6장 궁지에 몰린 미국의 정전 제의, 그러나!?621
제7장 개선가가 울려 퍼지다?749
후대에 남겨진 몫?912
<부록 1> 불후의 공적-항미원조 전쟁의 개요?917
<부록 2> 군혼(軍魂 대결-맥아더와 펑더화이?
<부록 3> 역사는 잊지 않는다-항미원조 전쟁 과정에서 소련의 중국에 대한 군사 원조?991
<부록 4> 조선 상공의 매--미그-15와 F-86에 관한 이야기?1011
<부록 5> 항미원조의 에피소드-차오몐(炒麵에 얽힌 이야기?1035
<부록 6> 서평 모음?1050
서평 1-존엄은 용자(勇者의 칼끝에 있다? 1050
서평 2-대가 없는 존엄은 없다?1055
서평 3-『決戰朝鮮』은 좋은 책이다?1060
<부록 7> 중국인 인명록(한자 병기?1064
<참고 문헌>?1069
이 책은 중국 현대출판사(現代出版社에서 발행한 『決戰朝鮮』(上, 下, 2017년에 발행한 개정판을 완역하였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돕는다.”
이는 바로 중국이 조선 전쟁(한국 전쟁에 개입하여 북한을 도운 명분이다. 1950년 6월 25일 조선 전쟁이 발발했다. 북한 인민군은 곧바로 서울을 점령하고, 이어서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낙동강 전선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허리가 절단되자, 전세는 급변하여 북한은 거꾸로 압록강 인근까지 퇴각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긴급히 지원을 요청한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충돌이 자칫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할 위험성이 있는 데다,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아직 못 벗어난 국내 상황을 감안하여 사실상 지원을 거부한다.
반면 ‘건국’(1949년 10월 1일한 지 1년밖에 안 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은 심사숙고한 끝에 조선(북한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1950년 10월 19일부터, 펑더화이(彭德懷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 정규군이 아니라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구성된 군대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규군을 차출하여 편성한 정예 군대였다.’ 약 30만 명을 야음을 틈타 비밀리에 북한으로 들여보낸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갓 수립된 상태에서 대규모 병력을 외국의 전장에 파견하기로 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즉 남·북 조선의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내전이므로, 외국 군대가 이 내전에 참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유엔군’의 외피를 쓰고 자신들의 추종하는 15개국을 규합하여 조선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부당하며, 그들이 파병한 진짜 목적은 사회주의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고, 중국을 위협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북한에 들어온 중국 군대는 10월 25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