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자 조선 아이, 승기
목격자 중국 아이, 진쉐
채소 장수 아저씨
미치코의 오해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조작된 사건
사라진 사람들
내 시간은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가까운 미래
윤봉길 심문 과정 취재
작가의 말
왜 윤봉길인가?
「일제강점기 아이들」세 번째 책『세 아이의 약속』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 생일기념과 승전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의 의거와 그때 그 자리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조선, 중국, 일본 세 아이의 갈등과 화해를 담고 있다.
윤봉길이 의거를 일으켰던 1932년 당시 조선의 상황은 무척이나 비관적이고 암울했다. 일제 통치가 당연시되고 뿌리내림으로써 독립에 대한 희망이 거의 사그라들어 변절자가 속속 생겨났고, 유명 인사들이 앞장서서 조선의 딸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어린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보내야 한다고 대중들을 설득하며 다녔다. 같은 해 이봉창이 일본 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했고, 상하이 임시정부 역시 일본의 집요하고 악랄한 보복과 탄압으로 거의 와해되다시피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중국의 장개석(장제스 총통은 임시정부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며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은 더욱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일어난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 일로 일제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지만, 독립에 대한 열기는 점점 타올라 실의에 빠져 있던 조선인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독립에 대한 열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전 세계에 조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자 의거를 일으켰다는 윤봉길의 의지가 파도가 몰아치듯 물결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야
폭도가 아니라고!
이 책은 윤봉길이 의거를 일으킨 그날의 훙커우 공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날 그 현장에는 세 아이가 있었다. 한국 아이 승기와 중국 아이 진쉐, 그리고 일본 아이 미치코이다. 세 아이는 같은 영어 교습소에 다니며 공부하는 단짝 친구들이다. 그러나 훙커우 사건 이후 세 아이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 나라의 관계처럼 미묘하게 뒤틀린다.
그날 승기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일본인들의 흥분과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