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품고 있는 각기 다른 시간으로의 여행,
우리가 살아온 기억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누구나 골목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구석에 숨어 술래가 다가올까 조마조마했던 술래잡기, 퐁당퐁당 고무줄놀이를 하던 동네 친구들의 웃음소리,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만드는 나른한 고양이, 해질녘 은근히 퍼지던 저녁밥 냄새와 아이들을 찾아 나선 어머니의 높은 목소리가 들리던 골목길. 이젠 그런 풍경의 골목길을 만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다.
재개발의 홍수 속에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는 넓어지고 건물은 높아지기만 한다. 어울렁더울렁 이런저런 사연이 흘러가는 골목은 자꾸만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은 골목조차 젠트리피케이션의 몸살 속에 도리어 주민들이 떠나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골목은 지금의 모습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해왔는지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므로 이를 기억하고 기록으로라도 남기는 일은 필요하다.
이 책에서 정명섭 작가는 조선시대 수도 한양 시절부터 근현대까지 서울의 골목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특히나 각 골목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손바닥 소설(초단편 소설’로 그때 그 시절의 골목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김효찬 작가는 특유의 손맛 나는 드로잉으로 골목길의 정겨움과 신비로움을 더했다. 특히 이 책에서는 ‘픽쳐드로잉’이라 이름 붙인, 사진 위에 그림을 그려 넣은 신박한 드로잉을 선보여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마주하는 골목마다 각기 다른 과거의 시간으로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피맛길은 조선시대 한양으로, 세운상가는 1988년과 1999년으로, 명동은 2010년으로, 광장시장은 2019년으로….
전작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 역사 기행이었다면, 《골목의 시간을 그리다》는 역사의 주인공에게 가려져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골목의 생애와 우리가 살아온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인생의 굴곡과 닮은 열 개의 길을 걸으며
골목의 생애를 기억하다
골목은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