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 거짓말을 말하다
오늘날 일반인은 물론이고, 정치가, 언론인, 법조인, 학자들도 너무도 쉽게 거짓을 말한다. 언론이 페이크 뉴스에 속아 거짓을 보도하는가 하면, 다수 정당에서 거짓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적 주장을 공식 발표하기도 한다. 데리다가 생전에 진행한 세미나를 바탕으로 출간한 이 책은 거짓말이란 무엇인지,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몽테뉴, 루소, 칸트, 아렌트, 코이레 등 철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특히 아렌트의 관점을 중심으로 거짓이 진실을 모방하기보다 아예 대체해버린 오늘날 거짓말의 특징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아울러 1995년 8월 15일 일본이 과거에 식민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에 저지른 잘못을 사과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발언을 세밀히 분석하면서 그것이 ‘일본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음을 질타한다.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짓을 말하는 자는 단지 거짓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거짓말은 선택이며 의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짓말의 정의는 그리 간단치 않다. 자기 말을 자신도 믿고, 남을 속이려는 의도 없이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면, 그가 거짓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심지어 참말을 하면서도 타인을 속이기 ‘원한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것이지만, 자기가 하는 말을 자신도 믿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자신에게 거짓말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루소는 타인이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 유명한 위조화폐 사례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아무것도 빚진 것 없는 사람에게 위조 화폐를 준다면, 그는 상대를 속이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거짓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루소는 거짓말의 결과로 입게 되는 피해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