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서론
1. 1. 중국의학과 근대국가의 조우
1. 2.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을 넘어
1. 3. 공진화적 역사를 향하여
1. 4. 중국의 근대성
1. 5. 근대성 담론
1. 6. 비려비마
1. 7. 용어들
2장 주권과 현미경: 1910~1911년 만주 페스트 방역
2. 1. “페스트는 전염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믿지 못하겠소”
2. 2. 폐페스트 대 선페스트
2. 3. “4,000년 동안 가장 잔혹했던 경찰”
2. 4. 중국의학의 도전: 홍콩과 만주
2. 5. 추안란: 감염자 간의 연결망과 그 확장
2. 6. 유행병을 피해서
2. 7. 국제감시체계의 일원이 되다
2. 8. 결론: 만주 페스트의 사회적 특성
3장 의료와 국가 연결하기: 1860~1928년 선교의료에서 공중보건으로
3. 1. 선교의료
3. 2. 서양의학의 지위: 청말과 메이지 일본
3. 3. 1세대 서의의 등장
3. 4. 공공사업으로서의 서양의학
3. 5. “공중보건: 대규모 사업을 벌이기에 아직은 때가 이르다”, 1914~1924
3. 6. 위생부와 ‘근대 정부의 의료에 대한 의무’, 1926~1927
3. 7. 결론
4장 중국의학과 서양의학의 관계를 상상하다, 1890~1928
4. 1. 1890년대 말 중국의학과 서양의학의 회통
4. 2. 경맥과 혈관의 불통
4. 3. 위옌과 셋으로 나누어진 중국의학
4. 4. 대결 장소를 피해서
4. 5. 에페드린과 ‘국산 약물의 과학 연구’
4. 6. 중국의학에서 경험 전통을 만들어내기
4. 7. 결론
5장 중국의학 혁명과 국의운동
5. 1. 중국의학 혁명
5. 2. 중의학교의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
5. 3. 중국의학의 폐지: 1929년의 제안
5. 4. 3월 17일의 시위
5. 5. ‘국의’의 양면적 의미
5. 6. 난징에 파견된 중의 대표단
5. 7. ‘국의’의 상을 그리다
5. 8. 결론
6장 1930년대 상하이 보건의료의 시각화
6. 1. 상하이
“나귀도 아니고 말도 아닌 잡종의학”
새로운 중국의학의 탄생을 위한 세 겹의 싸움
1920년대까지만 해도 근대성의 안티테제로 여겨졌던 중국의학은 반세기 후 어떻게 중국 고유의 근대성에 대한 강력한 상징이 되었을까? 이 문제의 열쇠는 ‘비려비마(非驢非馬’라는 이 책의 제목에 있다. 요컨대 역사적 전환의 핵심은 ‘나귀도 아니고 말도 아닌’ 새로운 ‘종(種’의 중국의학이 등장했다는 데 있다. ‘비려비마’는 사실 경멸조로 쓰이는 관용구이다. 근대 중국의학을 향한 이 말은 나귀와 말의 잡종인 노새, 즉 서양의학도 중국의학도 아닌 ‘잡종의학’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한편으로 근대 중국의학이 서양의학은 물론 그때까지의 전통과도 구분되는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과정은 세 겹의 싸움이었다. 근대 중국의학은 서양의학 그리고 민족주의 국가와 공존하며 제도적·인식적·물질적으로 변혁을 거치면서 탄생했다. 첫째, 제도적 변혁이다. 중의는 국가와 의학이라는 관계 속에서 서의와 겨루어야 했다. 새로이 등장한 근대 국가와 의학의 접합 속에서 서의와 중의는 국가 보건 행정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경쟁했다. 둘째, 인식적 변혁이다. 서의들은 중국의학에 세균 이론이 존재하지 않으며, 병인(病因을 파악하지 못하기에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세균 이론을 수용할 것인가, 기존의 모습을 고수할 것인가. 중대한 기로에 놓인 중의들은 ‘변증론치(辨證論治’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셋째, 물질적 변혁이다. 중의는 서의의 공격에 맞서 중약(中藥의 유효성을 지켜내야 했다. 서의들은 정제되지 않은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달여 먹는 중약이 유효한 성분만을 분리해 투여하는 서양의학을 따라올 수 없다고 공격했다. 이에 중의는 약물을 연구하는 새로운 방식인 ‘역순 연구 절차’를 제시함으로써 딜레마를 벗어나려 했다.
‘대문자 근대성’이 아닌 ‘소문자 근대성’에 대한 탐구
한의학은 어떠한 형태의 근대성을 보여주는가
새로운 중국의학의 모습을 통해 레이샹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