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비판정본 『안응칠 역사』
다시 말해 이 책은 엄밀한 판독과 대조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안응칠 역사」에 대한 최초의 비판정본인 것이다. 비판정본editio critica, critical edition이란 서양고전문헌학에서 정립된 학술 용어로, ‘비판’이라는 말에는 후대 문헌학자들이 만든 ‘정본’과 최초의 ‘원본’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어떤 편집자가 아무리 신뢰할 만한 정본을 만든다 해도 그저 편집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저자가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문헌 전승이 허용하는 한에서 여러 다양한 독법이 가능하며, 이를 편집에 반영한 것이 바로 비판정본이다.
그런데 문헌 전승의 사정을 보면, 필사자들이 자신의 독법에 따라 문헌을 교정하거나, 오독하거나, 새로운 이해를 제안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새로운 독법은 곧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이므로, 문헌 전승과 편집의 역사를 기록하여 여러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자리가 바로 비판장치apparatus criticus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고, 후대에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비판정본 『안응칠 역사』는 바로 이런 개념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안중근의 친필 원고가 없는 상황에서, 많은 오자와 오식, 오류를 지닌 문헌을 주관적인 판단에서 자의적으로 삭제하거나 고치지 않았고, 자료에 근거해 교정했다. 중요한 사실은 기존의 문헌들에 보이는 오류 내지 다른 독법을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비판 장치에 분명하게 기록해두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번 책은 얼마든지 다른 독법이 가능하고, 안중근의 원본이 세상에 나올 것을 대비하는 ‘열린 정본’을 지향하고 있다.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독법, 질정과 비판을 바라마지 않는다. 학문은 이러한 참여로 발전하며, 여러 생각들이 모여 앞으로 세워지게 될 ‘안중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