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
제1부 돌아오다 ―― 歸
퇴계 이황이 반한 장쾌한 비경: 안동 고산정孤山亭
산수에 이름 붙이고 홀로 노닐다: 경주 독락당 계정溪亭
인생 멘토를 만나 「성산별곡」을 쓰다: 광주 환벽당環碧堂
바위를 열어 서재 짓고 성인의 길을 읽다: 괴산 암서재巖棲齋
풍월 부르고 산천 끌어들여 한 백년 보내리라: 담양 면앙정?仰亭
노인이 동쪽 바닷가에 정자를 지은 까닭은: 동해 해암정海巖亭
늦게 돌아온 자연에서 누리는 청복: 성주 만귀정晩歸亭
초당에 몸을 누이니 영쇠가 덧없구나: 경주 덕봉정사德峰精舍
세파에 지친 몸, 폭포와 계곡에 뉘다: 안동 만휴정晩休亭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이 탄생한 곳: 예천 초간정草澗亭
제2부 머무는 자의 내면 ―― 處
인자와 지자를 생각하니 부끄럽네: 거창 요수정樂水亭
벼슬도 마다하고 좋아하는 것 따르니: 경주 종오정從吾亭
취해서도 입을 다물고 깨어나서도 침묵하리: 괴산 취묵당醉?堂
매화와 학을 벗삼아 은일하다: 구미 매학정梅鶴亭
옥계 37경의 주인이 되다: 영덕 침수정枕漱亭
꼭꼭 숨어사는 즐거움: 영양 경정敬亭
물러나 후학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던 곳: 파주 화석정花石亭
맑은 물에 귀를 씻는 청년의 울분: 포항 분옥정噴玉亭
입암사우와 기거하며 자연을 노래하다: 포항 일제당日?堂
제3부 그리움이 향한 곳 ―― 慕
억울하게 죽어간 임진왜란의 영웅: 광주 취가정醉歌亭
죽음으로 절개 지킨 아내를 그리워하다: 김천 방초정芳草亭
조선의 아웃사이더 청운의 꿈을 키우다: 나주 영모정永慕亭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난 자리에 해가 뜨다: 양양 의상대義湘臺
나옹화상과 이색의 이루지 못한 만남: 여주 강월헌江月軒
기묘사화 피해 은거하던 6인의 선비: 이천 육괴정六槐亭
단종 유배지 마주하고 초막살이 한 절개: 제천 관란정觀瀾亭
누명 쓰고 죽은 자의 넋을 기리다: 포천 금수정金水亭
불의한 정치를 떠나 고향 땅을 밟다: 경주 귀래정歸來亭
칠형제의 인패를 걸고 정자를 짓다: 포항 칠인정七印亭
누정은 구심력과 원심력을 갖춘 인문의 정수
누정은 산수에서 만나는 ‘책 밖으로 튀어나온 역사서’이며 철학, 예술, 풍수, 건축, 지리를 담은 ‘뜻밖의 인문학 사전’이다. 정도전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은 하늘에 보이는 이른바 천문天文 현상이요, 산천초목山川草木은 땅에 보이는 이른바 지문地文 현상이요, 시서예악詩書禮樂은 인간 세상에 보이는 이른바 인문人文 현상이다. 천문 현상은 기氣에 의한 것이요, 지문 현상은 형形에 의한 것인 반면에, 인문 현상은 도道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누정은 구심력과 원심력을 갖춘 인문 현상의 정수다. 일월성신과 산천초목을 누정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다시 내보내 재배치했다. 시문이 있어 가능했다. 면앙정의 주인 송순은 담양의 제월봉에 정자를 짓고 “풍월은 불러들이고 아름다운 산천은 끌어당겨 명아주 지팡이 짚고 가며 한평생을 보내리라”며 풍월산천의 주인이 됐고 천문·지문·인문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됐다. 선비들은 누정은 물론 주변의 이름 없는 산과 물, 바위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편액과 산, 물, 바위에 붙여진 이름은 ‘고문진보古文眞寶’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누정이라는 끈을 잡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이 낡은 영상처럼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다. 글을 쓰는 동안은 누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 답을 소세양이 송순의 면앙정 현판에 남긴 글에서 찾았다고 했다. “산과 물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므로 반드시 사람을 만나 드러나게 된다. 산음의 난정이나 황주의 적벽도 왕희지나 소동파의 붓이 없었다면 한산하고 적막한 물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을 드리울 수 있었겠는가?” 이 글을 읽으면서 “연꽃의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음을 더한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을 떠올리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나갔다가 돌아온 이들의 거처
도연명陶淵明은 조선 선비의 롤 모델이었다. 그는 ‘월급 쌀 다섯 말을 위해 소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