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보기

도서명 조선조 후궁제도의 변천과 의미 - 솔벗한국학총서 24
저자 이미선
출판사 지식산업사
출판일 2021-01-05
정가 30,000원
ISBN 9788942390847
수량
서문 ● 5
일러두기 ● 16

제Ⅰ장 서론 ● 17
1. 연구 목적 및 필요성 _19
2. 선행 연구 현황 _22
3. 연구 방법 및 이용 자료 _28

제Ⅱ장 내명부內命婦 직제의 확립과 후궁 현황 ● 35
1. 후궁제의 연원과 개념 _37
1 후궁의 연원 _37
2 후궁 칭호와 용례 _63
3 후궁 유형에 따른 용어 검토 _82
4 후궁의 범주 _97
2. 《경국대전經國大典》 내명부 규정의 정립 _112
1 1428년(세종 10 내관 제도의 정비 _113
2 《경국대전》의 내명부 규정과 의미 _132
3. 국왕별 후궁 현황 _141

제Ⅲ장 태조~성종조 숙의淑儀 간택 관행의 성립과 지위 ● 151
1. 간택 후궁의 숙의 봉작 관행과 가문 배경 _153
1 왕비예비자로서의 숙의 _159
2 간택 후궁의 출신가문 및 가격家格 _180
2. 비간택 후궁의 신분과 내명부직 제수 _200
1 입궁과 신분의 다양화 _200
2 작위와 승급 부여의 특징 _215
3. 숙의 간택에 따른 후궁 작위의 봉작 방식 _223

제Ⅳ장 중종~숙종조 간택 숙의의 위상 변화와 내명부직 상향 제수 ● 229
1. 중종의 계비 간택과 간택 후궁과의 지위 구분 _231
1 중종반정 이후 숙의 간택 _232
2 후궁 출신의 계비 선정 _236
3 외부 간택에 의한 계비 선정 _239
4 외부 간택에 의한 계비 선정의 정례화 _245
2. 간택 숙의의 입궁 경위와 가문 _255
1 계사繼嗣 확대를 위한 숙의 간택의 시행 _255
2 숙의 간택자의 가문과 가격 _273
3. 후궁의 내명부직 상향 승급 _290
1 간택 후궁의 1품직 승작 _290
2 비간택 후궁의 직위 상향_294
4. 비간택 후궁 신분의 확대와 정치 관여 _302
1 비간택 후궁의 입궁 경로 _302
2 비간택 후궁의 정치 참여 _320
5. 숙종대 후궁의 정비正妃 승격 금지 _343
1 희빈 장씨의 왕비 승격 _343
2 희빈 사사賜死 후 후궁
비간택 후궁의 전후기 변화

저자는 우선 후궁의 개념을 간택의 유무에 따라 간택 후궁과 비간택 후궁으로 나눈다. 학계에 알려진 간택 후궁-승은 후궁이라는 분류는 승은 이외의 다양한 입궁 경로와 출신 성분을 가진 후궁의 존재 양상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왕실 혼례로 연구를(《조선사회 이렇게 본다》 시작하여 정진해 온 저자이기에 가능한 명확한 개념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 저자는 조선시대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내명부제도와 시대 분위기에 따라 후궁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전기(태조~성종조 비간택 후궁에 노비, 과부, 첩녀 등 다양한 출신의 여성들이 포함되었으나 후기(영조~고종조 이후 정식 절차를 거친 궁인 출신들이 많아졌음을 지적한다. 전기에는 유교의 명분론적 법체제가 미비했으나 중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적 신분질서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계비의 지위에서 후사後嗣 확대로

성리학적 종법 질서와 명분론이 공고화되고 《경국대전》에 내관제도가 확립된(세종 10 이후 내명부 법체제가 뿌리내리면서 중기부터 간택 후궁의 위상이 변화된다. 조선 초기에는 문종의 비에서 보이듯 후궁의 지위에서 왕비로 승격되었으나 중종 이후 숙종대부터 간택 후궁에서가 아니라 외부 간택에 의해서 계비繼妃가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왕비 예비자로서 후궁의 역할이 축소되고 후사 생산자로서 의무가 강해지게 되었다. 저자는 연산군~숙종조대 간택 후궁의 가문에서 전기와 다르게 당상관과 공신세력의 비중이 낮아지는 현상을 각각 도표화함으로써 간택 후궁의 지위 변화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간택 후궁 가문에서 왕비를 다수 배출한 가문의 성관인 파평 윤씨, 여흥 민씨 등이 보이는 것처럼(표 Ⅳ-4 후궁 가문의 가격家格은 높은 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중종 이후에도 숙의淑儀는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선발되었다. 조선사회에서 혼인이 강력한 가계집단과 인척관계를 확립하는 중요 수단이었던바, 후궁의 선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