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4
1장 김육과 조선 왕조 시대
1 위대한 정치가 김육, 오늘날 관료와 정치인의 귀감 13
2 김육의 졸기 19
3 김육의 생애를 보여 주는 풍부한 기록들 23
4 김육이 자라고 활동한 조선 중기 27
5 유학의 정책 이념 30
6 조선 전기 조세 제도의 개관과 대동법 36
7 조선 왕조의 정치 체제와 통치 원리 45
2장 역경 가운데 정진하고 경세제민의 뜻을 키운 생애 전반부
1 기묘명현의 후손으로 태어나다 81
2 김육 가문의 당색 85
3 김육의 두 스승 91
4 소년 시절 품은 경세제민의 포부 99
5 임진왜란과 가정의 곤경 101
6 김육의 효성과 가문 의식 104
7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다 111
8 김육과 후손의 조호익 현창 사업 114
9 성균관 태학생 시절의 활동 118
10 계축옥사로 관직의 포부를 접다 123
11 김육과 허균 129
12 가평군 잠곡에서의 10년간 농민 생활 133
13 김육이 농사짓고 살던 잠곡의 현 위치는 어디인가 140
14 김육과 인연이 있는 지역 143
15 김육의 재산루가 정약용과 마에마 교사쿠와 인연을 맺다 147
16 김육의 생활 자세와 처신 151
3장 관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친 생애 후반부
1 인조반정으로 관직 진출의 길이 열리다 156
2 김육이 역임한 관직과 조선 왕조의 관료, 정치인 양성 체제 162
3 김육이 생각한 국정 과제 172
4 지방관으로서의 활동과 업적 175
5 인조 대 중앙 관료로서의 활동과 업적 197
6 인조 대 외교 활동과 업적 221
7 효종 즉위 직후 정치 지형의 변화와 김육의 부상 2 25
8 효종의 신임을 얻어 충청도 대동법과 동전 통용책의 시행을 관철하다 271
9 충청도 대동법의 시행과 정착 307
10 경기도 대동법의 개정 논의와 양전, 그리고 『전제상정소준수조획』 324
11 동전 주화의 통용을 위한 공헌 330
12
김육의 업적은 곧 조선 경제사의 업적
대동법과 동전 통용책
대동법은 조세 제도를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만든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이는 토지 결수에 따라 정량의 쌀로 조세를 납부하는 방식으로, 기존에 공물을 납부하던 방식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했다. 지방 관부의 불법적인 징세, 방납인과 관리에 의한 중간 수탈 등을 해결했다. 농지 소득에 따른 조세 기준을 확립함에 따라 조세 징수가 공평해졌고, 납세자들의 부담 또한 덜해졌으며, 조세 부과 기준이 명확해지고, 재정은 충실해졌다. 대동법은 민생 안정, 재정 충실화, 그리고 시장 발달을 통해 왕조의 부흥에 이바지한 최대 사업이었다고 할 만하다.
대동법은 토산물의 수탈을 막아 생산을 촉진했다. 물품 화폐, 금속 화폐로 납부된 대동세로 공물을 조달하게 되면서 시장 또한 성장했다. 김육이 끊임없이 건의하고 추진했던 동전 통용책은 대동법의 확대 시행과 맞물려 조선 후기의 경제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듯 조선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김육의 공로는 빼놓을 수 없다.
저자인 이헌창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제사학회, 한국고문서학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사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에서 가장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경제 정책을 시행한 김육에 대한 평가와 함께 조선 경제사를 개괄한다.
경제의 뜻을 끝까지 관철시킨
소신과 뚝심의 개혁가 김육
김육의 졸기에 드러나듯이, (김육은 “평생 경제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고 출세한 사람은 거의가 경세제민을 임무를 삼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평생 경제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라고 『조선왕조실록』에서 평가받은 인물이 드문 점에서, 국가를 잘 다스려 인민을 구제하려는 김육의 사명감 내지 책임 의식은 각별했다. 그래서 김육은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대동법 등 소신의 정책 수행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