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들어가며
제1부 명과 조선의 문인교유와 문학교류
1장 문관출신 명사신 접반과 문학교류
1. 명사신 접반을 통한 문학교류의 배경
2. 문관사신 접반과 문학교류 활동
1 1602년 고천준(顧天峻·최정건(崔廷健 접반
2 1606년 주지번(朱之蕃·양유년(梁有年 접반
3 1609년 유용(劉用·웅화(熊化 접반
2장 조선문인의 명사행과 문학교류
1. 명사행을 통한 문학교류의 배경
2. 명사행과 문학교류 활동
1 16세기 말~17세기 초 이정구의 사행
2 1597·1611년 이수광의 사행
3 1614·1615년 허균의 사행
제2부 조선의 중국 시론 수용과 시선집 편찬
1장 명대 전후칠자 시론의 비판적 수용
1. 전후칠자 문학의 수용 경로
2. 한시에 대한 인식과 전후칠자 시론과의 접점: 허균의 시론을 중심으로
1 시문 비평의 독자적 기준 강조
2 전후칠자 시론의 수용과 변용
2장 중국시선집의 유입과 편찬
1. 중국 당시선집의 유입과 조선본 간행
1 명과 조선문단의 당시선집 유행
2 <당음>·<당시품휘>의 수용과 조선본 간행
2. 조선문인의 중국시선집 편찬
1 허균의 중국시선집 편찬
2 이수광의 <당시휘선> 편찬
제3부 중국으로의 조선한시 전파와 조선한시의 재발견
1장 명문단으로의 조선한시 전파와 시선집 간행
1. 명문단의 조선시선집 간행
1 명나라 장수의 조선 관련 서적 편찬
2 사행을 통한 개인시선집의 중국 간행
2. 명문단의 조선한시에 대한 재인식
1 중화문명의 자부심과 ‘채시(采詩’의 전통
2 성정(性情의 발현과 ‘진시(眞詩’의 구현
2장 조선문단의 조선시선집 편찬
1. 조선 조정의 <해동시부선> 편찬
2. 허균의 조선시선집과 시화집 편찬
1 조선한시의 가치 인식
2 조선한시의 한시사적 위상 재발견
맺으며
수록논문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
<징비록>과 ‘화정(華政’의 시대!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사라진 시대, 그런 만큼 문학의 위로는 더욱 절실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연이은 당쟁과 반정으로 갈등이 정점에 치달은 시대.
16세기 후반 이후 17세기 전반기를 우리는 전쟁과 당쟁의 시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일본의 침입과 조선의 요청에 따른 명나라의 참전으로 조선 땅은 순식간에 한중일 삼국의 전쟁터가 되었다, 백성들은 전란의 고통에 신음하고 위정자들은 그 고통의 소리를 외면하며 오직 왕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막연히 느끼는 이 시기의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과연 그때의 조선은 그렇게 황폐하고 처참하기만 한 공간이었을까.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들은 총칼을 휘두르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의 문학에 매료되어 이를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조선의 문인들은 전란으로 조선의 시문이 불타 사라지는 상황에 안타까워하면서 중국 장수들의 조선한시 수집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전란 속에서 조선의 한시를 두고 이국 문인들 간에 우정이 싹텄고, 이로써 조선시는 중국으로까지 널리 소개되었다.
1597년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 오명제는 조선 땅에 와서 처음 제대로 접한 조선한시를 보고 그 수준에 탄복하며 이를 널리 구한다. 그리고 당시 조선 최고 지식인이었던 허균과 이덕형 등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조선시가 수집되고, 오명제는 이렇게 모인 조선시들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가 <조선시집>을 출판한다. 이 시집은 중국 문인들이 기존에 접했던 사신들의 수창 시집인 <황화집>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조선한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렇게 소개된 조선의 한시는 중국 문단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고 이후 조선을 방문하는 중국 장수들과 사신들은 앞다투어 조선시를 수집한다. 그 과정에서 허난설헌의 <난설헌집>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고, 난설헌은 이후 중국 문단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조선 시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란 이후 조선을 방문한 중국 문인들은 조선문인들과의 문화교류에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