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이야기’의 원류, 『삼국지연의』 이전의 텍스트
『삼국지평화』는 원나라 지치 연간에 간행되어 명나라 홍치 갑인년에 초간본이 나온 『삼국지연의』보다 170여 년 앞선다. 이러한 삼국 이야기는 대대로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당·송 시대에도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 이전의 소설 『삼국지』의 현존하는 텍스트는 『삼국지평화』가 유일하다. 『삼국지평화』 이전의 삼국 이야기 텍스트가 전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내용과 체제가 어떤지 알 수 없었으나 『삼국지평화』 판본이 전함으로써 정사 『삼국지』에서 출발하여 각종 민간 공연 장르를 거쳐 『삼국지연의』에 이르는 ‘삼국 이야기’의 변화과정을 그려볼 수 있다.
조자룡이 창을 들고 출전했다. 장비는 대로하여 장팔신모를 휘두르며 조자룡을 죽이려 했다. 두 말이 교차하는 순간 두 장수의 창이 이무기처럼 꿈틀댔다. 격전이 30합이나 지속되었다. 장비는 분노를 터뜨렸다.
“일찍이 창을 잘 쓰는 자를 본 적이 있지만 이놈은 정말 강하구나!”
기존의 소설 『삼국지』는 잊어라!
『삼국지연의』와는 다른 ‘삼국 이야기’
『삼국지』와 관련된 국내 저서만 하더라도 실로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저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소설 『삼국지』 텍스트 중 최초인 『삼국지평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도입부다. 한 고조 유방에게 원한을 품고 죽은 한신·팽월·영포가 저승의 재판을 통해 다시 이승의 조조·유비·손권으로 환생하여 한나라 마지막 임금 헌제로 환생한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또한 ‘장비 『삼국지』’라 불러도 좋을 만큼 장비의 활약이 눈부시다. 도원결의를 주도하거나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워 물리치거나 소패성에서 여포의 포위망을 뚫고 조조에게 원군을 청하러 가거나 서주를 잃고 유비·관우와 헤어져 고성으로 들어가 무성대왕이라 부르며 쾌활이라는 연호를 쓰는 등 제갈량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반부에서는 장비가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도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역할이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