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실 세계
시작하며
제1장 우왕의 즉위와 명사 살해 사건
1. 공민왕 시대 개관
격동의 공민왕 시대|공민왕의 친명반원 외교|공민왕 시대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
2. 명사 살해 사건
우왕의 즉위와 이인임|우왕 즉위 전후 일련의 사건들|명사 살해, 그 배후는?|북원의 개입과 심왕|신진사대부의 저항, 정도전의 유배|이인임의 반격|이인임은 누구인가|민감한 심왕 문제|신진사대부는 왜 친명사대를 주장했을까?
제2장 이인임 정권, 명과 북원 사이에서
1. 이인임 정권
도당, 집단지도체제|저항하는 대간|골칫거리, 우왕 생모 반야|유배당한 김속명|무장의 성장을 견제하다|일본 통신사 나흥유|명의 정료위와 북원의 나가추|북원과의 교섭|왜구 방어를 둘러싼 갈등|2인자 지윤|도당의 확대|북원의 연호를 채택하다|지윤, 제거당하다|3인체제|해도원수 정지 장군
2. 명과 북원 사이에서
성과 없는 일본행 사신|북원의 군사 요청|명의 홍무 연호를 다시 채용하다|강경해진 명의 태도|태후까지 나선 대명외교|고려 사신을 거부한 명|사신단 구성의 문제|주원장의 고려 길들이기|이성계의 ‘안변책’|이성계와 정도전, 정몽주|이인임을 폭로한 사신 김유|행례사 김구용|조공 문제, 타결을 보다|주원장이 반긴 사신 정몽주
3. 이인임 정권과 최영
천도를 반대한 최영|끈질긴 천도론, 왕조의 위기|정권의 친위대, 임견미?염흥방?도길부|성년에 들어선 우왕|우왕의 저항, 주변의 문신|이인임과 최영 그리고 경복흥|이성계의 등장, 운봉전투|반발하는 우왕, 측근의 환관|이인임과 최영, 일선 후퇴|우왕의 한양 파천|우왕을 탓하는 간관, 우왕을 위하는 환관|우왕의 인사권 찾기, 수상 최영|수상 임견미, 밀려난 최영
제3장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
1. 명과의 관계 회복과 권력 변화
임견미 정권과 북원|우왕의 여성 편력|우왕과 최영|주원장의 승인이 떨어지다|순조로운 대명관계|우왕의 반격|말 교역 문제|주원장의 경고|이이임의 은퇴, 우왕의 인사권
2. 철령위 문제와 최영의 요동정벌
주원
친명사대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권력투쟁의 핵
이미 ‘고려 무인이야기’, ‘몽골 제국과 고려’ 시리즈로 고려시대에 대한 역사적 내공과 유려한 필력을 입증한 바 있는 지은이는 이 책에서도 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고려 말의 정치를 다루면서도 시야를 넓혀 위화도 회군을 부른 요동정벌의 정치적 산술 등 북원 및 명과의 외교사까지 아우르면서 이를 국내 권력투쟁의 큰 줄기로 제시하는 해석 틀은 신선하다.
“친명사대의 외교노선을 처음 확정한 공민왕은 이성계나 그 공신들에게 그 대세의 길을 열어주고 권력투쟁의 장을 마련해준 것이다. …… 공민왕 사후 등장한 이인임 정권은 …… 주로 무인들을 권력기반으로 하면서 친명사대관계를 부정하거나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이는 신진사대부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통해 친명사대를 주장하던 신진사대부가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인임 정권과 인연이 없었고 변방 출신으로서 소외되었던 이성계가 신진사대부와 제휴했던 것은 그래서 가능했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의 결합은 이성계가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첫 번째 기반으로서 이인임 정권의 덕을 크게 본 것이다.”(345쪽
위화도 회군이란 극적 장면을 담담하게 넘어가는 등, 소설적 상상력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에 충실한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최영이 이성계 즉위의 가장 큰 기여자라고?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란 일화로 유명한 최영 장군은 과연 청렴하기만 한, 고려의 충신이었는가? 지은이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최영은 권신 이인임과 권력을 양분했으며 요동정벌은 전시동원체제를 통해 확실히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무리였다고 본다. “요동정벌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고 국내 상황과도 어긋난 일이었다. 따라서 위화도 회군은 잘못된 요동정벌을 바로잡는 명분으로 피할 수 없었고 이성계는 이를 통해 정권 장악에 성공했던 것이다.”(298쪽 즉 이인임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성계를 끌어들인 우왕도 보탬을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최영이야말로 이성계의 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