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업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장편시대극화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는 1990~91년에 주간노동자신문에 연재한 만화이다.
이 만화를 처음 기획할 당시에는 조호상 시인과 함께 공동창작을 하기로 했다. 당시 만화제작실 ‘작화공방’을 꾸리고있던 나로서는 스토리 창작역량이 필요했다. 마침 민족문학작가회의 오철수 시인과 가깝게 지냈는데, 같이 일한다는 조호상 시인을 나에게 소개했다. 조호상 시인은 자신이 쓴 시 ‘누가 나를 이길로 가라하지 않았네’가 실제인물 인천노동조합협의회(약칭 인노협 사무국장으로 있는 김기자씨가 살아온 이야기를 접하고 쓴 시라면서, 김기자씨 살아온 과정을 만화를 그리자고 내게 제안을 했다. 나 역시 흔쾌히 동의를 하여 같이 인노협 김기자 국장을 만나 취재 겸 인터뷰를 했었다. 어릴 때 서울로 상경하여 온갖 고생을 한 평범한 여성노동자가 지역노동운동의 중심인 인노협에서 사무국장이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충분히 입지전적인 소재였고, ‘인물로 보는 노동운동사’를 만화로 그려낼수 있을 것같았다.
하지만 연재를 시작한지 몇 회 지나지 않아 조호상 시인은 만화라는 형식의 특수성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공동작업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사실 ‘만화’라는 형식은 종합예술적 성격을 갖고있어 만만한 영역이 아니다.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시각적 구성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영화장르와는 비슷한 면이 많지만 소설장르와는 많이 다를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추구하는 형식적 완결성을 따라오기가 벅찰 수 있다. 아무래도 ‘만화’ 문법을 새롭게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적 감수성하고는 많이 다르다. 물론 초짜라면 배우는 기분과 자세로 하나하나 감당해 가면 되지만, 명색이 ‘시인’인데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이야기구성과 작화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그러면서 스토리구성능력을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공식적인 글쓰기과정을 밟지 않아서인지 늘 글쓰기에 열등감 같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