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제1부 고구려?발해사 연구의 최근 동향
권순홍|고구려 도성 경관의 형성과 지배 권력의 추이1
Ⅰ. 머리말
Ⅱ. 왕권의 성립과 도성 경관의 형성
Ⅲ. 대왕의 등장과 도성 경관의 확립
Ⅳ. 맺음말
王志剛?唐?/陳爽 옮김|고구려 ‘졸본’과 ‘국내’에 대한 고증
Ⅰ. ‘졸본’ 범위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
Ⅱ. ‘졸본’ 범위에 대한 고증
Ⅲ. ‘국내’ 범위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
Ⅳ. ‘국내’ 범위에 대한 고증
Ⅴ. 맺음말
王志??唐?|高句?卒本???考
一. 卒本范?的?往?究
二. 卒本范?的考?
三. ??范?的?往?究
四. ??范?的考?
五. 余?
백다해|5세기 중반 국제정세와 고구려?송 교섭의 의미-459년 사행을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魏晉南北朝時代 肅愼과 高句麗의 관계
Ⅲ. 459년 사행의 재검토
Ⅳ. 459년 사행의 추진 배경과 의미
Ⅴ. 맺음말
김강훈|618~629년 영류왕의 대외정책과 고구려-당?신라 관계의 변화
Ⅰ. 머리말
Ⅱ. 영류왕의 즉위와 초기 대외정책의 방향
Ⅲ. 영류왕의 會盟 企圖와 좌절
Ⅳ. 맺음말
井上直樹|高句麗 遺民의 對日外交
Ⅰ. 머리말
Ⅱ. 高句麗 遺民運動-??三國史記?? 安勝亡命記事의 再檢討
Ⅲ. 高句麗 遺民의 反亂과 唐?新羅
Ⅳ. 高句麗 遺民의 對日外交와 新羅
Ⅴ. 맺음말
井上直樹|高句麗遺民の?日外交
Ⅰ. はじめに
Ⅱ. 高句麗遺民運動??三?史記??安勝亡命記事の再?討
Ⅲ. 高句麗遺民の反?と唐と新羅
Ⅳ. 高句麗遺民の?日外交と新羅
Ⅴ. 結語
植田喜兵成智|‘內臣之番’으로서의 百濟?高句麗 遺民-武周~玄宗 開元 年間 유민의 양상과 그 변화-
Ⅰ. 머리말
Ⅱ. 武周 정권과의 관계
Ⅲ. 開元期의 활동과 봉선제
Ⅳ. 맺음말
김수진|고구려 유민 후속 세대의 중국 출자 표방과 당대 현실
Ⅰ. 머리말
Ⅱ. 播遷의 강조와 望姓의 모칭
Ⅲ. 給復十年의 종료와 氏族志의 편찬
Ⅳ. 맺음말
제2부 고구려?발해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책의 1부 ‘고구려 발해사 연구의 최근 동향’에 수록된 논문들은 도성사, 대외관계사, 유민 문제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데, 이들 주제는 최근 고구려?발해사 연구자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들이다.
우선 고구려 도성은 권순홍과 왕즈강(王志?·탕미아오(唐?가 다루었다. 권순홍 고구려 도성 경관의 형성과 지배 권력의 추이?에서 2000년대 이후 대대적으로 이뤄진 고구려 유적에 대한 발굴 성과를 분석하여 고구려 도성의 공간적 배치를 분석하였다. 특히, 공간의 배치와 구성만을 파악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간에 투영된 권력관계를 주시하며, 역사적 ‘경관’에 대해 살폈다. 고구려의 경우, 종묘와 궁실만을 갖춘 1단계 경관의 형성을 지나, 뇌옥과 창고를 갖춘 2단계 경관이 이미 2세기에 구현된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태학과 불교사원을 마련함으로써 대왕의 등장을 표출한 3단계 경관의 형성시점을 4세기 후반으로 파악하였다.
왕즈강·탕미아오의 글 역시 도성의 위치와 지리공간을 다룬다. ?고구려 ‘졸본’과 ‘국내’의 지리 공간 고찰?에서는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활용하여 주로 환인과 집안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의 유형 특징과 공간 분포 법칙을 제시하며 지리 공간 범위를 추정하였다. 졸본 지역을 왕도로 삼는 시간이 길지 않았고, 정권 건립 초기에 있던 상태였기에 전체적으로 건설 계획이 드러나지 않는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 지역은 왕릉의 배치 계획 그리고 왕성구와 능묘구, 기보구의 구별이 엄격한 것으로 보아 왕도의 전체 도시 계획을 천도 초기에 이미 정하였고, 오랜 시간을 걸쳐 구현해 나갔다고 보았다.
백다해와 김강훈은, 고구려 중심의 국제정세와 대외정책에 대해 글을 썼다. 백다해는 5세기 중반 국제정세와 고구려·송 교섭의 의미에서 459년 11월 고구려가 숙신을 대동하여 송에 사신을 파견한 사건에 대해, 미시적이면서도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숙신의 대동이라는 형태의 사신 파견이 건강 중심의 천하관을 정립하려 했던 송과, 북위를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