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얼마나 큰 기회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
<강을 건너는 아이>는 꿈조차 제 뜻대로 꿀 수 없었던 백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조선 시대, 백정은 갓을 쓸 수 없고, 여자는 저고리에 검은 표시를 해야 했다. 결혼할 때는 가마를 못 탔고, 죽어서도 상여를 못 탔다. 천민이라는 신분에 갇혀 억울하게 당함에도 그것이 억울한 일인지를 몰랐던 사람들.
백정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다. 배우지 못하기에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함은 아는 이들의 거짓말에 쉬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양반은 지식을 가진 권력자였고, 백정은 휘둘릴 수밖에 없는 희생양이었다. 그 시절 백정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오직 부모의 억울함과 고된 일뿐이었다.
<강을 건너는 아이>는 천민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 어리석도록 만들어진 것임을 이야기한다. 소를 도축하는 아버지와 똑같이 백정이 될 운명이었던 장쇠. 그러나 아버지가 남몰래 소를 죽여 끌려간 탓에 뜻하지 않게도 아버지의 친구였던 육손과 지내게 된다. 그로부터 배우는 사냥 기술, 그것은 장쇠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운명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강을 건너는 아이>는 배움의 기회가 있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장쇠보다 더 큰 꿈을 꾸고 나아가라고 독려하고 있다.
“활을 배워 볼 테냐?”
- 69쪽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
<강을 건너는 아이>는 천민 장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신분이기에 자칫 우울한 배경이 이어질 것 같지만,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이야기는 긴장감 속에 웃음꽃이 여기저기 심어져 있다.
“뭐야? 이제 열둘이라고? 이제부터 누님이라고 불러라. 알겠냐?”
“내가 왜 널 누님이라고 불러? 나보다 키도 작은 게.”
“뭐? 나 너보다 한 살 많거든. 너 눈도 못 뜨고 엄니 젖 먹고 있을 때 난 여기 뛰어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