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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떄 (양장
저자 요안나 콘세이요
출판사 목요일
출판일 2020-10-15
정가 16,000원
ISBN 979119634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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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온 존재를 다해
고양이 털의 부드러운 잿빛 심연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어느 아침, 앙리는 일어나 뜨거운 차를 마시고, 버터와 잼을 바른 빵을 먹었다. 앙리는 평소보다 동작이 굼뜬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안개에 싸인 붉은 까치밥나무 열매. 그는 자신이 안개 속 까치밥나무 열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앙리는 앞마당으로 나가 잠시 서성였다. 저 멀리, 추수가 끝난 밀밭에는 두루미들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는 익숙한 오솔길을 걸어 큰길로 나갔다. 떡갈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동네 우편함들. 앙리는 주머니를 더듬어 열쇠를 꺼낸 다음, 우편함을 열어 보았다. 텅 빈 우편함……. 열쇠가 손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그는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앙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고양이가 집 앞 벤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앙리는 고양이 털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낡은 몽당연필을 꺼내어 문 아래에다 썼다. “돌아올게요.” 그는 벤치에 앉아, 여름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는 집 나무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의 시선과 손길이 닿는 곳은 어디일까
이 책은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 만든 그림책이다. 작가는 앙리의 하루를 천천히 따라가며, 그가 남긴 일상의 흔적을 조용히 더듬는다. 그리고 앙리가 느꼈을 외로움과 기다림, 두려움 같은 미세한 감정들을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앙리가 마음속에 담아가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날마다 바라보던 창밖의 풍경, 비를 머금은 바람의 냄새, 수레국화 줄기에 맺힌 작은 안개 방울. 그리고 함께했던 고양이의 보드라운 감촉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의 하루는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무한히 길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돌이켜보면 아득하리만치 짧고, 그 짧은 시간을 우리는 어떤 빛깔과 감촉으로 채울 수 있을까. 앙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