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에 처했을 때 무엇이 우리를 위로할까?
상실이나 이별을 겪은 뒤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한다. 우리가 예전에 알았던 친숙하고 안락하기만 한 세상과는 전혀 다른, 외롭고 고독한 세상의 실체를 갑작스레 깨닫는다. 슬픔에 빠진 인간은 자신의 슬픔을 세상에 투영하기 시작한다. 온통 슬픔으로 잠긴 세상은 장미덤불은 빛과 향기를 잃었고, 잿빛 가득한 거리에서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걷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슬픔에 잠긴 듯 보인다. 혹은, 누군가의 슬픔 따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세상은 그저 어제와 같은 평범한 날들처럼 힘차게 돌아가고, 오직 나 혼자 슬픔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외로움, 슬픔의 감정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슬픔 하나가 코를 훌쩍일 때마다, 또 다른 슬픔이 검은 연기로 피어올라 합쳐지는” 것을 본 개는 “어떻게 하면 저 슬픔들의 울음을 멎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슬픔을 위로하는 시적인 그림책
개는 장미 덤불을 위해 하모니카를 불었던 것을 떠올리고 배낭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연주하기 시작한다. 슬픔들이 조금씩 울음을 멈추고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 그때 어떤 슬픔 하나가 하모니카를 향해 손을 내밀어 함께 연주를 시작한다. 너무나도 슬픈 곡조로 시작된 연주는 점점 더 흥겨워지고, 슬픔으로 가득 찬 춤을 겅중겅중 추기 시작한다. 무리를 둘러 싼 검은 연기를 모두 흩어버리면서.
개가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하모니카로 시작된 음악, 그리고 점점 흥에 겨워 추는 춤. 슬픔을 치유하는 것은 음악과, 거기에 실린 춤사위로 우리 안에 있는 흥을 깨우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이 겪는 슬픔과 우울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아득한 자연의 시간 앞에서 삶의 유한함을 실감해야 하는 생명 본연의 슬픔 때문인지도 모른다. 태어나면 언젠가 죽음을 맞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질 때가 온다.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