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서(序 - 서애 유성룡의 부음
- 한양 묵사동에 울리는 백성들의 통곡 소리
1부. 전란의 먹구름
1. 1587년(정해년 손죽도 왜변, 두 장수의 상반된 죽음
- 오만한 일본 사신 다치바나
2. 1589년(기축년 압송되는 조선 어민, 사을배동
- 정여립 역모 사건, 유성룡의 승부수
3. 1590년(경인년 일본으로 가는 조선 통신사
- 도요토미의 선전 포고
4. 1591년(신묘년 정사와 부사의 엇갈린 판단, 국방 개혁의 좌초
- 서인 정철의 실각, 남북으로 갈리는 동인
5. 1592년(임진년 초봄, 허술한 국방, 안이한 장수들 - 폭풍 전야, 쓰시마의 침묵
2부.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조선
1. 1592년(임진년 봄 잔인한 봄, 전란이 터지다.
- 한양을 버린 선조
2. (임진년 여름 벼랑 끝 조정
- 전라좌수사 이순신, 해로(海路를 틀어막다.
3. (임진년 가을 백성의 피로 물든 낙엽
- 진주성이 살려낸 조선의 기맥(氣脈
3부. 3국 전쟁, 한양성 수복
1. 1592년(임진년 겨울 ∼ 1993년(계사년 초 평양성 수복
- 일진일퇴의 공방전
2. 1593년(계사년 봄, 폐허가 된 한양성
- 명나라 군대의 양면성,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산하
3. (계사년 여름, 진주 남강의 장례식
- 남녘땅을 동여맨 뱀의 똬리
4부. 교착상태, 이중 협상과 외로운 명의(名醫 유성룡
1. 1593년(계사년 ∼ 1595년(을미년, 조선을 살리는 제도의 정비
- 군역과 세제의 개혁
2. 1596년(병신년 강화 협상의 결렬과 도요토미의 복심
- 조선, 명, 일본의 동상이몽(同床異夢
5부. 전란의 재발, 7년 재앙의 막바지
1. 1597년(정유년 봄∼여름 이순신과 원균, 선조의 자충수(自充手
- 조선 수군의 궤멸
2. (정유년 가을∼겨울 남원성 시신을 비추는 한가위 보름달
- 기적처럼 부활한 조선 수군
3. 1598년(무술년 이순신의 전사와 파직된 유성룡
- 유성룡 낙향하다.
결(結 - 징비록
당파를 초월한 현실적 합리주의자, 재상 유성룡의 7년 전쟁
종군 기자의 시각에서, 징비록과 선조실록에 담긴 임진왜란을 르포 기사로 재조명
유성룡의 징비록을 토대로 조선왕조실록과 일부 사료를 참고, 임진란의 전황과 유성룡의 삶을 기사형식으로 재구성한 책 『징비록(懲毖錄 - 종군 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골격으로 삼았고, 선조실록을 비롯한 다른 사료는 보완자료로 활용했다. 징비록이 전란 이후의 기록인 만큼 유성룡은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재상이 분명하지만 부분적인 착오는 불가피하다고 보아, 전란을 기록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참고해 일부 수치와 일자를 조정했다. 단 정치적인 이유로 후세에 짜깁기된 선조수정실록의 날짜는 참고하지 않았다.
- 르포와 스트레이트 기사를 병행
기사는 대부분 르포 형태로 전개, 전쟁의 양상과 백성의 고통을 사료에 기반해 전개하는데 주력했고,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병행했다. 임진년(1592년과 같이 짧은 기간, 전황이 숨 돌릴 새 없이 진행되면 독자들이 이를 한눈에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간결하게 서두에 건조체 형식으로 제시했다. 르포 기사는 관찰자 시점으로 작성했고, 궁궐 및 전장의 출입 기자를 전제로 사료에 기반했다. 아주 제한적으로 나름의 직관과 상상을 동원했다. 사료에 있는 인물 코멘트는 본래 한자로 번역, 기록되는 과정에서 한 차례 변형을 겪은 만큼 그 본뜻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급적 일상어로 복원했다. 기사 전개과정에서 일부 논평이 개입하고 감정이 이입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설픈 문학적 상상력을 끼워넣지 않았다.
유성룡의 막역한 지기(知己이자, 전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해전은, 졸저(拙著 난중일기 -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쓴 이순신의 7년 전쟁 - 와 일치해, 대부분 스트레이트 기사로 짧게 처리했다. 다만 명량과 노량해전은 징비록에서도 깊게 다루고 있어 압축, 인용했다. 조선 수군이 최초로 패배한 칠천량 해전은 선조실록의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