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 자리한 청계천 버들다리에는 ‘전태일 다리’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습니다. 서울시는 100년 이내에 생존했던 인물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지명 제·개정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다리에 전태일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장소에 깃든 전태일의 상징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지요. 이후 다리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대로 전태일 동상이 세워졌고 그를 추모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 다리 위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이 한 아이에게 자신이 평화시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됩니다. 왜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는 대신 평화시장에 나와 일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곳의 작업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근로 기준법 책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사른 이유는 무엇인지……. 전태일 동상은 당시의 실상을 담담하면서도 굳은 어조로 아이에게 전합니다.
전태일은 열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평화시장에서 미싱사로 일합니다. 당시 평화시장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하는 어린 소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창문이나 환기 시설이 없는 작업장에서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하고, 잠 안 오는 약을 먹어 가며 하루에 15시간이 넘도록 일했습니다. 소녀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와 사업주는 부유해졌지만, 정작 이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온갖 직업병에 시달려야 했지요. 이런 상황을 부당하게 여긴 전태일은 사업주에게 하루에 8시간 근무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쉬도록 규정한 근로 기준법을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사업주는 전태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업주를 감시해야 하는 근로 감독관마저 그를 외면합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노동청, 시청, 방송국에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더 고단하고 위태로워져만 갔지요. 결국 전태일은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절한 외침과 함께 자신의 목숨을 내던집니다. 그 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