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교토 답사의 미적분 풀이
제1부 헤이안 이전
광륭사: 일본 국보 1호와 도래인 진하승
하타씨 유적 순례: 도래인 하타씨의 교토 개척사
야사카 신사와 기온마쓰리: 기온이 있어서 교토는 시들지 않는다
제2부 헤이안시대
후시미 이나리 신사와 고려사터: 지나가는 이여, 마음속에 기려보렴
헤이안쿄 동사: 꽃은 화려해도 지고 마는 걸
히에이산 연력사: 영산에 서린 빛과 그림자
히가시야마의 청수사: ‘청수의 무대’ 전설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었네
우지 평등원: 극락이 보고 싶으면 여기로 오라
부록
교토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답사 일정표
일본 문화답사 1번지, 교토를 가다
: 교토의 문화유산을 통해 일본의 역사를 읽는다
일본편 3권 ‘교토의 역사’는 천년 고도(古都 교토의 진면목을 살피기 위해 헤이안시대 이전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 교토의 역사를 씨줄로 삼아 유물과 유적을 선보이는 한층 진화한 ‘답사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한반도 도래인의 문화를 토대로 발전시켜 오늘날 일본의 ‘국풍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현장감 넘치는 설명과 이미지로 그려낸다.
경주를 빼놓고 한국의 문화를 논할 수 없듯 교토를 빼고 일본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교토는 일본 역사에서 1천년간 수도(首都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문화의 진수가 다 모여 있고, 일본미의 꽃이 여기에서 활짝 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위상은 숫자로도 증명되는바, 교토부(府 전체에 사찰이 3,030곳, 신사는 1,770곳이 넘는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만 해도 사찰이 13곳, 신사가 3곳, 성이 1곳으로 모두 17곳이나 된다. 이를 보기 위해 해마다 국내외에서 8백만명이 모여들어, 교토는 세계적인 역사관광 도시가 되었다.
유홍준 교수가 교토를 찾은 이유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일찍이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가, 교토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적함으로써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집필 의도를 책 곳곳에서 드러내 보여준다. 그 어느 곳보다 교토는 한반도 도래인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곳이다. 황폐한 교토에 댐을 세우고 수로를 만들어 비옥한 땅으로 일군 하타씨(秦氏의 숨은 공로가 없었다면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 천도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본문 42~47면 참조. 일본 국보 1호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광륭사(廣隆寺, 고류지에는 신라계 도래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당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는 원효와 의상의 실물과 가장 가까운 초상화가 인화사(仁和寺, 닌나지에 보관돼 있다. 또 신안 해저 유물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복사(東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