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가 들려주는 귀자 이야기
《기다림》은 소설가 진아가 들려주는 진아의 어머니, 귀자의 인생 이야기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이야기며,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가족과 생이별하며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화자인 진아의 목소리를 통해, 또는 액자 소설처럼 귀자의 목소리를 통해 이어진다. 소설가 진아는 귀자의 막내딸이다. 최근까지 어머니를 곁에서 보살피던 진아는 시골로 이사를 가면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된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여기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한국전쟁 때 잃어버린 어머니의 아들을 찾아 주기로 했던 약속을 떠올리면 죄스러운 마음이 더하다. 진아의 삶도 바쁘고 버거워 열심히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꼭 진아의 잘못도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기다리는 신청자는 너무나 많고 그 기회는 너무나 적다.
내 어머니의 가여운 인생, 귀자전(傳
귀자는 함경남도 갑산군 신흥리에서 삼 남매 중 가운데 딸로 태어났다. 방앗간 집 딸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에도 배를 곯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귀자가 열일곱 살 때, 일본군이 결혼하지 않은 처녀를 전쟁터로 끌고 간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결혼을 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급하게 치른 혼사였지만 부부가 된 두 사람은 가정을 꾸려 살아갔다. 그사이 일본은 패망했고 나라는 독립했다. 하지만,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와 행패가 심했고, 남쪽에선 미군이 실질적 지배를 했으며, 38선 주위에서는 군사 충돌이 잦았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귀자는 첫아이를 낳고 남편과도 행복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귀자가 둘째 딸을 낳은 얼마 후, 시부모님께 인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필 이때 전쟁이 터졌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귀자와 남편, 첫째 상일과 둘째 민혜는 그길로 급하게 남쪽으로 피란을 떠난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피난 행렬 속에서 귀자는 둘째의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기 위해 남편, 아들과 잠시 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