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경쟁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승리를 목적으로 서로 겨루는 스포츠는 흥미 있는 뉴스거리가 된다. 더구나 경쟁이 갈등이라는 요소와 결합하면 즐거움은 더 커진다. 언론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다른 뉴스에도 스포츠 경기처럼 경쟁의 요소를 첨가하기도 한다. 선거와 관련된 보도에서 정당정책이나 인물의 자질보다는 현재 어느 후보가 유리한지에 더 중점을 두고 보도하는 관행을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유력 후보자인 거물 정치인 간의 갈등이라는 요소를 첨가하면 수용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언론은 정치보도에서도 점차 정책보다는 인물, 정책 경쟁보다는 선거 판세의 우세 여부에 초점을 두고 흥미 위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경마 저널리즘(horse race journalism’이다. 이는 언론이 소재 자체의 속성과 무관한 방식으로 접근해 사건의 뉴스 가치를 바꿔놓은 대표적인 사례다. _36쪽
인류 최초의 전근대적 신문 형태는 로마의 악타 푸블리카(Acta Publica와 악타 듀르나(Acta Diurna에 기원을 두고 있다. 로마에서 전근대적 신문이 나올 무렵 중국에서도 저보(邸報 혹은 조보(朝報가 등장했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신문들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국가통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6세기에 인쇄술이 개량되고 동서교류가 빈번해져서 뉴스 수요가 증가하자 인쇄업자들은 정기적으로 신문을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이르러 진정한 의미의 근대 신문이 성립하게 됐다. 한편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와 ≪주보≫는 국민계몽, 부국강병, 상공업 발달 등을 목적으로 개화 사상파에 의해서 발행됐다. 이후 개화 사상파-애국계몽 운동가들은 ≪독립신문≫, ≪ㅁㆎ일신문≫, ≪황성신문≫, ≪뎨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을 발행했다. 일제는 1910년 강점 이후 무단정치를 수행하면서 총독부 기관지만 남기고 우리 언론지를 일절 허가하지 않아 민족 언론의 암흑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