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제왕과 천문
1. 조선 건국과 천문도의 비밀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민심이 두려운 조선 건국세력
고구려 천문도는 ‘우연히’ 발견된 것일까
류방택, 이성계가 삼고초려한 고려의 천문 전문가
2. 천문도를 돌에 새기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탄생
석각 천문도의 600년 수난사
고구려 천문도가 아닌 고려 천문도였다?
동양 별자리 3원 28수
서양 별자리 황도 12궁
왕은 왜 천문도를 원했을까
별자리와 천문도는 언제부터 만들었을까
3. 태양은 제왕의 상징
태양이 사라졌다, 태양을 구하라
일식과 월식은 초미의 관심사
임금이 덕을 쌓으면 일식을 막을 수 있다
낮에 금성이 보이면 위험하다
금성, 연산군도 벌벌 떨게 한 별
혜성을 이용해 승리한 김유신 장군
4. 하늘의 움직임을 읽지 못하면 왕이 아니다
이방원에 대한 선입견
과감했지만, 하늘의 현상에 민감했던 태종
‘하늘의 뜻’을 의심한 세조
제후국 조선은 독자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5. 국가 통치와 시간
백성을 위한 시계를 만들다
종을 쳐서 시간도 알리고 새 왕조가 들어섰다는 것도 알리고
인정과 파루, 통행금지 시간을 알리다
광화문 종으로 관리들에게 조회 시간을 알리다
종소리와 북소리가 도성 밖에까지 들리지 않는 게 문제
통금시간에 붙잡히면 ‘경을 친다’
종루의 우여곡절
낮에는 진각법, 밤에는 경점법
왕은 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려고 했을까
2부 : 세종과 천문 프로젝트
6. 조선의 하늘을 원한 세종
첨성대를 설치하다
잠들지 못하는 천문관들
북극고도를 직접 관측하다
한라산에서 노인성을 관측하다
7. 왕립천문대의 건설
조선의 하늘과 명의 하늘은 다르다
조선의 천문대를 만들자
7년 프로젝트의 완성
세종은 왜 간의대를 옮겼을까
그리니치 천문대보다 먼저 지어진 간의대
8. 원나라 천문학을
하늘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면 왕이 아니다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 군주들은 하늘의 현상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늘이 인간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읽었다. 특히 제왕의 정치 행위에 대해 하늘이 상과 벌을 내린다고 이해했다. 하늘은 두려운 존재였다.
조선의 왕은 일식과 월식을 특히 두려워했다. 태양은 왕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혜성이 나타나거나 낮에 금성이 보이는 현상도 불길한 징조라고 받아들였다. 조선 2대 왕 태종은 정치에 걸림돌이 된다면 형제도 친인척도 살해할 정도로 냉정하고 과감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하늘의 현상에 민감했다. 일식이나 기상 이변이 나타나면 두려워하며 근신했다. 이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 세종도 하늘을 주의 깊게 살피고 공경했다. 하늘의 현상이 예사롭지 않으면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죄수를 파면하고 풍악 소리를 멈추게 했다. 연산군도 낮에 금성이 나타나자 벌벌 떨었다고 한다.
왕은 하늘의 현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천문 현상을 단서로 삼아 올바른 정치를 펼치는 것이 왕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왕들은 하늘의 지도인 천문도를 필요로 했다.
조선의 하늘과 명의 하늘은 다르다
조선의 하늘을 원한 세종의 천문 프로젝트
이토록 하늘의 현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독자적인 하늘과 시간을 갖고 있지 못했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하늘의 일은 천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고 천자만이 대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과 명은 제후국과 천자국 관계였기에 제후국인 조선은 하늘을 관측해서 달력을 만들 수 없었다. 조선이 자주적인 역법을 갖는다는 것은 사대의 예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조선은 명나라의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명 황제가 내려주는 달력이 조선에 도착해야만 그에 맞춰 날짜와 절기, 일출?일몰 시간을 백성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문제는 명나라 수도인 연경과 한양이 서로 위도가 달라 절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여러 불편한 일이 많이 생겼다.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