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와 창조의 미학, 다다이즘 세계로의 초대
유럽의 근대 예술이나 아방가르드와 관련한 서적은 국내에 이미 많이 출간되었음에도 다다이즘에 관심 있는 독자의 욕구를 충족할 만한 자료는 거의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다이즘 역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시대로부터의 탈출》의 국내 출간을 큰 의미를 갖는다. “다다이즘 운동의 도덕적, 철학적 기원에 대한 증거”이자 “다다이즘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다다이즘의 태동과 의미 및 활동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스위스 취리히에 모인 예술가들은 현대 예술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마련한다. 삶이 전쟁과 죽음으로 둘러싸여 있던 시대, 다다이스트들은 삶과 유리된 예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쟁이 초래한 살육에 대한 냉소에서 더 나아가, 근대 이후 유럽을 지배해 오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신뢰와 문화적 가치를 부정했다. 전통적 예술 형식의 파괴와 부정을 주장하면서, 혼돈과 순수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를 포함해 비이성적이고 반문화적인 예술 운동을 전개했다.
발이 문을 연 다다이즘 운동의 산실인 <카바레 볼테르>의 공연에서는 다다이즘의 본질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시 낭송과 산문 낭독, 합창, 클래식 연주, 즉흥 연주와 즉흥적인 극,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작품’이 소개되었다. 기상천외한 발상과 생동감이 넘치는 카바레 볼테르의 퍼포먼스는 ‘무례한 제스처’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형식의 파괴를 통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현대 예술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 책은 발이 시인 차라, 휠젠베크, 추상화가 칸딘스키 등과 함께 강연, 토론, 공연, 전시회를 통해 다다이즘을 창시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렸다.
‘시대로부터의 탈출’을 꿈꾼 한 예술가의 초상
《시대로부터의 탈출》은 1910년에서 1921년까지 후고 발의 일기 형식의 글을 모은 책으로, 20세기 초반 세계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부딪쳤던 한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