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서 연설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주제 전환과 그 배경을 읽어내는 재미
작품은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가 우연히 만나 아테네 시 근교의 일리소스 강변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수려한 풍광의 전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한다. 둘 사이 대화 소재는 당대 최고의 연설문 작성가 뤼시아스의 ‘에로스(사랑’를 주제로 한 연설이다. 그 연설에서 뤼시아스는 육체적 욕구를 가지면서도 그 욕구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사랑을 하지 않는 자(소년애인’의 능력임을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뤼시아스의 연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며 자신이 주도하는 다른 두 이야기로 화제를 옮기는데, 그 주제는 각각 ‘사랑을 하는 이에게 기쁨을 줄 것인가,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쁨을 줄 것인가’와 ‘연설술이란 무엇이고, 연설술은 기술인가’다. 이처럼 전후반부의 주제 전환이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우며 이 전환의 배경에 놓인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이 대화편의 읽기의 백미이다.
다양한 철학적 주제의 제시와 그리스 문화를 보여주는 풍성한 이야깃거리
『파이드로스』에서는 ‘에로스’와 ‘연설술’이라는 소재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여러 가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진행한다. 광기, 혼의 세 부분, 카리스, 설득 등 플라톤이 부각하려는 여러 철학적 주제들이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하나로 엮이어 제시된다. 이러한 가운데 그리스 여류시인 사포의 시를 비롯한 서정시가 등장하고 육체적 쾌락과 동성애 문화 등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들이 펼쳐진다. 바로 이 점에서 『파이드로스』는 철학적 깊이와 문학적 작품성을 함께 지닌, 플라톤 대화편 가운데 수작이라 불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