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드가 솔로몬 노섭을 풀어주지 않은 이유
<노예 12년>은 한 흑인 남자가 12년 동안 노예로 살면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20년 전인 1841년의 뉴욕에서 시작한 영화는 바이올린 연주자인 솔로몬 노섭이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가면서 무대를 루이지애나 주로 옮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노섭의 주인이 된 농장주 윌리엄 포드는 인정이 많은 인물이다. 경매장에서 자식들과 떨어지게 된 노예를 보다 못해 노예 가족 모두를 사려 하기도 하고, 노예들에게 성서를 읽어주기도 하며, 노섭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익을 보자 보답으로 바이올린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관대한 포드도 결국에는 노섭을 다른 농장주에게 팔아넘긴다. 노섭이 자신은 본래 자유인이라며 항변했는데도 포드는 왜 노섭을 풀어주지 않았을까? 포드 자신의 말대로 빚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포드라는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있다. 포드는 노예 소유주로서 지닌 한계, 나아가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미국 남부라는 노예제사회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즉, 풀어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풀어주지 못한 것이었다.
노예제사회란 무엇인가?
인류가 문명 단계에 들어선 이래, 노예는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단순히 노예와 노예제가 있다고 해서 그 사회를 노예제사회로 부르지는 않는다.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노예가 전체 주민 가운데 일정한 비율 이상이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만 노예제사회로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진정한 노예제사회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19세기 미국 남부는 그중 하나에 해당한다. 면화를 재배하는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업은 노예노동에 크게 의존했다. 무엇보다 남부 백인 사회에서 노예를 부린다는 것은 부와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의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또한 노예제사회였다.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에 이르는 고대 로마의 전성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