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할머니 이름은 ‘섭순’
소녀는 할머니가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기억 속에서 꺼내 놓는다.
“우리 할머니는 작은 들꽃을 좋아했어요.”
“목련이 필 때면 베란다까지 깨끗이 닦아 큰 창을 활짝 열어 두었어요.”
“여름이 오면 흰 모시옷을 반듯이 다려 입었어요.”
“무더운 날에는 달달한 과일을”
“낙엽이 질 때면 밀가루를 반죽해 은행잎을 닮은 만두를 만들었어요.”
사계절의 순환과 함께 흐르는 세월 속에 그려진 ‘섭순’의 모습은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 닿아 있다.
“할머니, 이 꽃 이름이 뭐야?”
“민들레.”
“할머니, 할머니도 이름이 있어?”
“그럼.”
할머니 이름은 ‘섭순’이다. 아들이 태어나기 바랐지만 ,딸이 태어나 섭섭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조차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할머니로 불릴 때가 훨씬 많았으니까. 할머니가 이름 없는 작은 들꽃을 좋아한 건 어쩌면 자신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섭순은 언제나 예쁜 것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었기에, 작가는 따뜻한 색과 담담한 연출로 그를 추억하기로 했다.
▷ 시골 책방과 현대미술 작가의 만남
고진이 작가는 2012년부터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며 ‘기억과 공간, 관계’에 대한 작업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발표해 왔다. 8년 동안 열 차례 넘는 개인전과 여러 전시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그림책이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딱 1년 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고진이 작가가 우연히 딸기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도 식힐 겸 강화에 온 작가는 그림책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책방이 출판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작가는 그림책으로 풀어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그림책으로 만들 수 있겠는지 물어왔다. 그 물음이 출발이 되어 1년 동안 작가,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