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 김진호
머리말
제1장
초기 이스라엘의 기원을 이해함에 있어 최근의 위기
제2장
‘출애굽’, 역사인가 신화인가?
제3장
트란스요르단 정복
제4장
요단 서쪽 지역 정복: 이론들과 사실들
제5장
현장에서 나온 사실들:
진짜 이스라엘의 고고학적 재발견을 위한 발굴된 증거
제6장
현장에서 나온 더 많은 사실: 최근의 고고학 연구들
제7장
철기 I시대 유물복합체의 물질문화에 대한 결론
제8장
초기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문헌 자료와 인공유물 자료를
종합하려던 과거의 시도
제9장
초기 이스라엘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다른 종합을 향해
제10장
종합을 위한 또 하나의 시도:
변경 지방 농경민의 개혁운동으로서의 초기 이스라엘
제11장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민족성과 고고학적 자료
제12장
성서 전승을 구해내다: 역사인가, 신화인가?
옮긴이 후기
기초 자료
성서의 고고학적 증거를 찾아나서는 여정과
수십년간의 학계 흐름이 집약되어 있는 핵심 성서신학서
이집트에 내렸다는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의 장자만 죽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연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건넜다는 바닷길은 어디인지 특정할 수 없다. 수십만 이스라엘인이 40년간 머물렀다는 사막에서도 고고학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출애굽에 대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한 고고학적 발굴은 계속되었다. 윌리엄 폭스웰 올브라이트 등 초기의 고고학자들은 ‘결국 성서가 옳았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손에 성서를 들고 한 손에 삽을 들고’ 여리고 등의 유적지 발굴에 임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산산조각 낸 바로 그 벽을 찾아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초기 이스라엘 고고학의 기초를 쌓은 올브라이트 학파의 주장은 한국에서 아직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독일 중심의 유럽에서는 알트-노트 학파가 등장하여 평화적인 이주설을 주장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이 인종청소에 가까운 정복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로운 정착 과정이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이어졌다고 보았다.
고고학의 역사 속에서 발견된 유물이 쌓이고 연구되면서 이스라엘의 기원은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한다. 1970년대 노먼 갓월드는 알트-노트 학파의 점진적인 정착설을 받아들이지만 올브라이트 학파와 알트-노트 학파에서 공통된 ‘외부 유입설’을 비판하고 ‘내부 봉기설’을 주장한다. 이후 학계는 대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형성이 내부 요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갓월드의 관점을 계승한다.
갓월드가 계급적 요인에 의한 정치적 재부족화를 강조하는 반면,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구적·생태적·경제적 요인 등 장기간에 걸친 변화를 통해 이스라엘이 출현했다고 본다. 그래서 근래에는 고전 가설들의 ‘정복(conquest’과 ‘이주(migration’라는 키워드 대신에 ‘출현(emergence’이라는 표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