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부 조선 후기 조선과 일본의 독도 인식
1 조선 정부의 독도 인식
울릉도 쟁계 이전의 독도 인식
울릉도 쟁계 전후의 독도 영유권 인식
2 에도막부의 독도 인식
호키주 어민의 울릉도 도해와 에도막부의 독도 인식
울릉도 쟁계 당시의 ‘독도 조선령’ 확인
독도 조선령 인식의 정착
2부 메이지 초기 『태정관지령』의 ‘독도는 조선령’ 인정
1 『태정관지령』이 내리게 된 경위
시마네현 지적 편찬에 관한 질의서의 작성 경위
에도시대 외교 교섭 자료를 검토한 내무성의 의견과 질의
태정관의 결재와 지령 하달 및 공시
2 『태정관지령』에서의 ‘죽도외일도’ 논란
‘죽도외일도’에 대한 정의
‘외일도’가 독도라는 근거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측 주장에 대한 비판
3 『태정관지령』의 중요성
독도 영유권 귀속의 조약상 근거 공식 확인
‘독도 조선령’ 공시와 그 후 무주지 주장의 허구성 증명
3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독도 인식
1 대한제국기의 독도 인식
고종의 ‘울릉도 개척령’과, 독도 관할을 공포한 칙령 제41호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 결정에 대한 대한제국 정부의 대응
2 대한제국기 일본 정부의 독도 인식과 흑룡회의 독도 무주지 주장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한 일본의 각 정부기관
흑룡회의 ‘양코’섬 발견 주장과 무주지 주장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 결정
3 일제강점기 일본의 독도 인식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일본의 수로지 편찬
수로지에 독도를 울릉도 부속으로 서술
4부 일제 패전 이후의 독도 인식
1 일본으로부터의 독도 분리
포츠담선언의 해석과 독도 문제
연합국최고사령부의 ‘독도 한국령’ 인식
독도 고유 영토 인식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2 대일평화조약 초안과 관계국의 독도 인식
대일평화조약 초안 작성 기간 중 미국의 독도 인식 변화
대일평화조약 체결 직전 한·미·일의 독도 인식과 대응
대일평화조약 체결 당시 미국의 독도 인식에 대한 비판
일본 국회의
왜 독도는 우리 땅일 수밖에 없는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영유권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명백한 근거들
일본 메이지 정부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공식 확인한 『태정관지령』(1877,
대한제국이 독도를 울릉도 관할로 명시한 ‘칙령 제41호’(1900,
독도를 일본의 통치?행정 범위에서 제외한 ‘SCAPIN 제677호’(1946,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을 명시한 ‘샌프란시스코조약’(1951,
그 밖의 수많은 자료들이 증명하는 독도 영유권의 진실!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중간에 있는 섬이 아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킬로미터, 일본 오키도에서 157.5킬로미터 떨어진 섬이다. 오키도와 독도 간 거리는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보다 1.8배나 더 멀다. 울릉도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일상 생활권에서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데 비해, 일본 오키도에서는 독도를 전혀 볼 수 없고, 독도를 보려면 100킬로미터 이상 배를 타고 나와야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꽤 오래전부터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여겨왔다. 독도를 울릉도에 부속된 섬으로 보는 시각은 오히려 일본의 사료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태정관지령』, 『태정류전』, 『기죽도사략』, 『죽도지서부』와 같은 일본의 고문헌들, ‘칙령 제41호’, ‘SCAPIN 제677호’, ‘대일평화조약’ 등 수많은 자료들은 독도가 조상 대대로 우리 영토였음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독도 문제의 진실』은 독도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던 조선 숙종 때부터 국제법적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가 일단락된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 때까지, 독도가 우리 영토일 수밖에 없는 분명한 증거들을 통해 독도의 진실을 밝힌다.
이 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제1부에서는 조선 후기와 일본 에도시대의 독도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동해에 울릉도 이외에 다른 섬이 있다는 것은 『태종실록』에서부터 기록되어 있지만, 독도에 대한 보다 분명한 지리적 지식과 영유권 인식이 기록된 것은 『숙종실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