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부 동학 세력의 변혁운동과 기독교와의 갈등
1장 동학과 서학의 대립
동학의 서학 비판
동학 세력의 신원운동과 외세 비판
동학과 천주교의 충돌
2장 동학 세력의 반기독교 격문
격문에 등장한 기독교
격문 발신자의 정체
상호 이해의 가능성
3장 매켄지 선교사와 황해도 동학군
황해도 동학군의 봉기와 기독교 선교사
매켄지의 선교 활동과 동학군
동학과 기독교의 소통
4장 영학당의 결성과 기독교
영학당의 봉기와 주도 세력
종교적 외피로서의 ‘영학’
영학과 기독교의 관계
2부 근대종교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과 연대
5장 천도교의 창건과 기독교 모델
변혁운동의 해소
서북 지방 포덕과 천도교 창건
천도교의 근대 종교화와 기독교 모델
6장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
연원제에서 교구제로
기독교의 선교 시스템
현장의 경쟁
7장 천도교와 기독교의 교세 비교
교세의 양적 성장
평안남북도 지방의 교세
평안북도 군 단위 지역적 분포
8장 천도교와 기독교의 3?1운동 연대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대
중심 지역 평양의 3?1운동과 연대
경쟁 지역 의주의 3?1운동과 연대
경계 지역 선천-정주의 3?1운동과 연대
연대의 한계
결론
주석
찾아보기
갈등 속에서도 존재한 두 종교 간의 소통 통로 규명
제1부 ‘동학 세력의 변혁운동과 기독교와의 갈등’에서는 두 종교 간의 갈등과 소통에 초점을 두고 몇 가지 사례를 분석했다. 동학은 서학(천주교에 반대하여 창도 되었으나 실제로 서로 간에 큰 충돌은 없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전라도 일대에서 동학농민군이 천주교 성당과 교우촌을 공격한 적은 있으나 이후 서로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41쪽. 1885년 처음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도 서학의 범주에 속하므로 동학과는 본래적으로 적대적이었으나 동학은 기독교와도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서로 배척하면서도 동학농민전쟁 이후 동학의 남접세력이 기독교란 외피를 쓰고 변혁운동을 전개한 영학당 사례나 황해도 동학군 봉기를 지켜본 매켄지 선교사 이야기를 통해 소통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존스와 매켄지 사례를 통해 한울님, 하나님이란 신관神觀의 유사성을 통해 두 종교의 소통 통로가 상존했음을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천도교의 기독교 따라잡기 배경과 의미를 짚다
제2부 ‘근대종교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과 연대’에서는 3.1운동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선도적으로 촉발한 천도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파헤쳤다. 1905년 12월 창건된 천도교는 기독교를 모델로 삼아 근대종교로의 개편을 꾀했다. 서울에 천도교 중앙대교당, 지방의 각 교구에 교회당을 건립해 나갔다. 제사 형식의 의례를 일요일의 공중예배 형식으로 바꾸었다. 중앙집권적 교구제를 통해 포덕을 공개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교회당 설립, 예배형식, 포덕방식에 있어서 천도교는 기독교를 모방하고(211~216쪽 또 경쟁하면서 교세를 급격히 확대했다. 천도교인 40만, 기독교인 20만을 일컬을 정도로 천도교세가 기독교의 2배에 달했다(266쪽. 민족적 의제에 의기투합하여 천도교와 기독교가 3.1운동에서 연대하게 된 배경에 기독교를 모델로 한 천도교의 근대종교화,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을 통한 상호 교세의 확장